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네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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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흙은 말보다는 침묵에 가깝다. 그래서 흙을 닮은 농사꾼은 도회지 사람보다 말이 적다. 이 시를 읽고 나니 도종환 시인도 이제 농사꾼이 다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해직 10년 동안 그렇게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파 하던 그가, 몸이 아파서 교단을 스스로 내려와야 했을 때, 나는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그가 속리산 골짝에 입산한 것도, 흙과 더불어 침묵 속에서 몇 년을 살아오면서 산사람이 되어 가는 것도 하늘의 뜻인가.
그에게도 비워야 할 것이 있었을 터이고, 치유해야 할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고 비울 것을 비운 다음에 다시 찾아온 시가 바로 이 시(詩)일 것이다. 여기에는 산과 ‘나’가 둘이 아니고 구름, 새, 꽃잎, 바람, 물.....모두 제 갈 길을 가도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가고 새 하루를 맞아도 좋을 것이고, 우리는 읽고 읽어도 물리지 않는 시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배창환(시인 ·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