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천지가 구름을 쓸어낸
성산의 밤은
하늘의 별이 내를 이루다가 무거워져서
산등성이 위로
주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옛날에는 이곳을 두고
별이 쏟아지는 산등성이의 나라 라고
별뫼가야라고 하기도 하고
성산가야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에도 이름처럼 곱기만 한 곳은 없다.
반짝이는 별을 먹고 살 것같은 이 고장도
깊숙히 어둡다.
그중의 하나 별뫼가야 토기는
너무 구워서 절망처럼 검다.
뼈와 살을 온전하게 자를 수 없었던
석기와 청동의 고단한 검에게
퇴거를 명령한
철제의 칼과 창과 낫의 서릿발같은 절단도
투박한 검은 토기와는
손을 잡아야 했다.
성산동고분 38호 2호곽에는
별고을 토기가 집대성되어 있다.
장경호, 단경호, 고배, 발, 합, 잔
부서진 기대(器臺)까지
차곡차곡 김밥처럼 쟁여놓기도 하고
송편처럼 괴어놓기도 했다.
그 많은 토기 사이
2호곽의 장방형 동쪽 가장자리에
두 사람 앉을만한 공간의 어둠이 있다.
Ⅱ
성산동고분 38호 2호 곽의
동쪽 가장자리 공간은
발굴되어
천하에 명명백백하게 공개되어도
깊고 어둡기만 하다.
삼한 땅에서
가장 고열로 구운 잿빛 토기들이 지천인데
그 검은 자리를
검게 지킨 사람이 떠오른다.
평생 주군을 모시다
저승의 영화를
지키러 빈 자리에 앉았다.
천년이 가고
또 천년을 한번 서 보지 못했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머리카락 한올
잇빨 한개
무엇 하나 남은 것 없이 앉은 채로 다 무너졌다.
뼈가 견고한 토기들
고배의 두껑에 고등 껍질 몇개와
항아리 주둥이에 볍씨 한 톨의 형체는
뚜렷하다. 그러나
세월이 인간에게 그렇게 독한가.
인간이 세월 앞에서 그렇게 허무한가.
인간의 사기는 역사를 누락하고
뼈가 단단한 검은 토기는
은밀한 비기로 천 장을 적었다.
성산가야의 천 장 역사책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