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뻘뻘 흘리며 한나절 지나도록
논둑의 풀을 깎았다
인물이 훤하다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날아간다
살아온 세월 엉망진창
잡초만 무성하다
다시 숫돌에 낫을 갈아
깎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낮 햇볕이 쏟아지는 다랑논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 할머니의
눈빛도 고단함도
이 논에 머물러 있을까
해마다 논둑 가에 피어나던 찔레꽃도
하늘의 구름도 풀벌레 울음도
뻐꾸기 노래도 밤하늘의 별도
이 다랑논에 잠겨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잠깐 머물다 떠난 것들이
논 가득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걸까
이 논을 참 많은 것들이 바라보고
돌보고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논을 휘둘러보고 물꼬를 보며 생각한다
지난 모든 것들이 이 논에 다시 모여
모든 것들의 양식이 되고 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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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논둑에도 한 해 동안 땡볕 아래 제 생명을 불태워온 잡풀들이 수북한 때, 논둑이랑 조상님 산소에도 벌초하는 시간이다. 이 논은 그냥 논이 아니다. 참새와 찔레와 구름과 풀벌레와 뻐꾸기와 별들이 이곳에 잠겼다 가고 또 바람으로 흔들린다. 그들이 모여 ‘이 논을 지키고 돌보고’ 있다는 깨달음은 오랜 세월, 흙과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훤해진 논둑을 보면서, 저 논에 모든 것들이 모여서 다시 논이 되고 양식이 되는 날을 꿈꾼다. 이래서 시인이나 농사꾼 모두 흙에 발 딛고서 마음과 육신의 양식을 만들어낼 꿈을 꾸는 사람이다.
배창환 (시인․ 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