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을 앞둔 불 꺼진 구멍가게 맥주상자 뒤에서 기침소리가 들린다.
소주병 힘없이 쓰러지는 소리 따라 들린다.
눈은 유들유들 내리고
고양이 쓰레기 종량제 비닐봉지를 찢어 헤치는
이 밤은 갈 곳 없는 중년의 저 사내와 눈 밑에 딴딴히 얼어붙은 땅뿐이로구나.
-------------------------------
겨울은 따스한 구들방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이어가기에도 벅찬 계절이다. 추위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들이닥치는 겨울밤, ‘불 꺼진 구멍가게 맥주상자 뒤’ 약간의 공간이 이 ‘중년의 사내’의 집이다. 이 공간은 바람벽이 두어 방향으로 쳐져 있을 것이고 나머지 두어 곳은 이 구멍이 숭숭한 상자가 막아내는 만큼이 벽이 된다. 겨울눈은 이 사내와 아무 상관없이 내리고, 그러니 시인은 ‘유들유들 내리고’라고 말한다. 그만큼 차갑고 무섭다. 이 사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는 ‘쓰레기 종량제 비닐봉지를 찢어 헤치는’ 배고픈 고양이와, 이 살풍경을 보고 있는 시인의 시선뿐이다.
시인은 일부러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풍경으로 그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중년의 사내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사내를 바깥으로 몰아내고도 태연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에 대한 비판, 그리고 모든 따뜻함 뒤에 가려진 슬픔의 그늘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 뒤에 감추고 있는 부끄러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시다.
배창환 (시인 ∙ 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