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심각한 국론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다소 주변부로 벗어나 있는 국민들은 어느 목소리가 진정 국민을 위하고 진정한 국익인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되었던 폭압의 시대도, 효율이라는 미명아래 일사불란을 강요당했던 시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른바 열린사회에 누구나 참여하고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양한 목소리도 내고 세대ㆍ계층별 「자기이익」도 제약 없이 추구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때로는 자기 이익 추구가 대승적 국가이익에 배치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달리하는 상대집단과 이해가 상충되면 조정자도 중재자도 나온다. 그러나 첨예한 대립은 어느 집단도 조정ㆍ중재를 따르지 않는다. 최후로 「유권해석기관」(법원)에 해결책을 의뢰한다. 그 해석이 자기집단 이익에 배치되면 최후 보루인 그 기관도 불신ㆍ매도하고 승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현상들을 말없는 다수 국민은 수없이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상대를 타도해야 살아남는 이른바 「제로섬게임」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부는 이 나라 역사를 「정의가 실패하고 불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라고 재단했다. 또한 계층 간의 갈등 원인을 기득권 세력의 권력이동 현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 당위성 여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편가르기와 무관하지 않고 국론분열을 부른 한 원인이 되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실패한 역사」 속에는 오늘날 눈앞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가 내포돼 있음을 알게 한다. 진상규명과 화합의 이름으로 과거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주변정세에 대처하고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미래지향적 큰 그림이 요구되는 시대인데도 국정목표는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친일ㆍ분단ㆍ6.25책임소재 규명, 개발독재ㆍ산업화 세대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매도당한 쪽도 항변하기 시작했다. 보수골통, 친미 사대주의자라며 또 반격했다. 논쟁은 드디어 막말을 난무하게 했다. 아마추어,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아마추어가 희망이라 대꾸하고 마침내는 「저주의 굿판...」이 나오고 말았다. 상호 존중과 금도(襟度)는 이미 사어가 된지 오래였고 타도의 대상이 돼 버렸다. 이 나라의 구두선(口頭禪)인 빈부의 양극화만 있는 게 아니라 극한 대립의 양극화도 그 대열에 끼였다. 이런 와중에 친일 운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문제를 말하기 전에 명시적이고 악질적 친일행위는 민족의 이름으로 묻혔던 행적을 찾아내어 응징해야함에 반대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다만, 다소 친일 행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이거나 살아남기 위한 친일이야 어떻게 응징하겠는가 이다. 또 오늘에 와서 소모적 논쟁은 국가 발전이나 국민화합에도 무익하므로 국력의 낭비를 막고 생산적 에너지로 바꾸자는 것이다. 가수=백년설=나그네 설움, 이는 나라 잃은 설움을 한 가수의 단장의 절규에 실어 한을 푼 노래인데 왜 꼭 ‘친일’ 만을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삶의 애환을 굽이굽이 실어 녹여낸 노래, 어느 여흥의 자리에도 빠지지 않는 ‘국민제창’의 노래인데 왜 ‘친일’을 덧씌우려 하는지...... 내 고향 성주는 지금 1회 대회 개최 이후 중단된 백년설 가요제를 두고 추진위와 반대 대책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성주’하면 유림, 유림하면 거유(巨儒)요 대표적 항일지사인 김창숙(金昌淑)선생을 떠올림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분의 지적처럼 이런 분의 고장에서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을 추모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갖는다는 것은 조금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사안으로 거명하기 조차 조심스러운 김창숙 선생의 고장임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굳이 추진위 측의 논리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반대 측 이유를 다시 언급할 이유는 없다. 이는 양쪽모두의 논리를 부정할만한 논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말했듯이 「정치는 현실」이라 했으니 국고 보조금까지 받아 반대쪽의 정서를 무릅쓰고라도 결행해야할 시대적 요구가 있다고 생각하여 개최하려 했을 것이다. 이는 「현실」도 민족정기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아마 모르긴 해도 추진위쪽도 거대한 담론 「애국선열의 유지」앞에는 별 논거를 댈 수 없었을 것이다. 철저히 현실과 실리를 택한 조치였을 것이다. 백년설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행적을 가진 가수들의 고장에서도 두 공영방송이 후원하여 20년 간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장 이미지 제고와 엄청난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거뒀다고 한 것은 지방화 시대를 맞아 다소의 물의가 따르더라도 철저히 실리위주의 행정을 편 것이 아닌가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하듯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고 친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총칼 들이대는 시대상황도 조금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어느 유명 시인도 훗날 친일행적이 드러나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탄식하며 한 말이 그 시대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 하늘이 이 하늘이 될 줄은 몰랐다」고. 「지방화 시대」말이 났으니 말인데 지금 어느 지방은 그 지방의 특색과 대표성을 살릴만한 이벤트를 찾느라 고심하는 곳도 있고 겨우 찾아 채택한 이벤트가 모든 이의 공감을 못 얻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 또 역사상의 인물을 두고 연고권을 서로 주장하다 행사를 각기 치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전혀 다르다. 각기 다른 분분한 논쟁의 접점을 못 찾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이 정부 들어 과거사를 조사하며 「진실과 화해」를 강조했다. 진실을 밝히는 몫은 정부 몫이고 화해는 우리 국민들이 그 주체이다. 실패한 역사도 역사이다. 잘못되었다고 다 부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연면히 이어온 역사는 어떻게 지탱하겠는가. 위화도회군, 「십만양병설」을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분명 잘못된 역사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말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까지 자기 이익에 따라 대립하고 「전부」아니면 「전무」인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가. 제발 소모적 논쟁은 논쟁으로 끝내고 타협과 중재를 통해 중용의 길을 가자고 감히 제언한다. 아무리 내 주장이 옳다고 해도 중론이 아니면 승복할 줄도 알자. 민주주의가 뭔가. 「민주주의는 나쁜 제도이다. 다만 나쁜 제도 가운데 가장 덜 나쁜 제도일 따름이다」라고 설파(說破)한 사람이 있듯이 누구나 이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 어디에도 지고지선한 제도와 문물은 없다.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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