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고국땅을 떠나 이웃나라 중국을 여행한다는 설레임에 잠마저 설쳤다.
대구공항에는 벌써 저마다 여행가방을 챙겨서 모여들 있었다.
가슴이 두근두근∼비행기에서 점심을…기내의 음식은 기대했던 만큼 맛은 별로였다.
도착한 북경의 날씨는 듣던 대로 후덥지근하고, 특히 하늘이 희멀건한 것이 다소 뿌연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북경거리의 모습에 연신 고개를 돌려봤다. 전봇대 위에 매달린 전선으로 움직이는 전동버스, 대로를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달리는 사람들, 우리나라 60∼70년대에 보았을 법한 버스, 빌딩, 다양한 차 등 이색적인 북경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이드의 여행 일정 등을 들으면서 처음 간 곳은 「부국해저세계」라는 동양 최대 규모의 수족관이었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바닷속 생물들이 많이 있었다. 아크릴 투명 지하터널은 바다속에 터널을 뚫은 것처럼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오래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보는 물고기도 많았고 짧은 시간동안 둘러보았음에도 얼마나 큰 수족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좀 더 여유 있는 구경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음식은 한식인 불고기였다. 우리나라의 불고기와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우려했던 마음을 털어 내고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서커스를 구경하러 갔다. 요술을 부리는 듯한 여러 묘기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둘째날
6시에 기상해 아침은 호텔의 현지식(뷔페로 음식은 그리 다양하거나 잘 되어 있진 않았지만 아침식사를 하기에는 적당했다)으로 먹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우리들은 명13능에 도착했다.
명나라의 황제 13명이 모셔져 있는 능이다. 명나라 왕은 16명이었는데 3명의 능은 남경 등에 묻혀있다고 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지하궁전이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오랫동안 밀폐된 지하에 있다가 바깥 공기를 접하자 색깔이 변하고 부식되어 보존된 것이 거의 없고 발굴 당시의 사진만이 남아서 현재 복원해 놓아 나머지 유적지도 발굴자체를 유보해 놓고 있다고 했다.
명13능 중에 정릉만이 발굴된 것은 발굴 자체를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위험한 능묘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의 현재 기술로는 도저히 발굴이 불가능해서 나머지 12개의 능이 아직 발굴이 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데, 이를 본 일본정부는 『개발을 해줄테니 그 수입을 나누자』고 중국정부에 제안하자 모택동은 『지금 우리가 다 발굴하면 우리의 후손이 앞으로 할 일이 없잖소. 나머지 12개의 능은 우리 후손이 해야할 숙제로 남겨 두겠소』라며 정중히 거절하였다고 한다.
입맛에 맞지 않은 점심을 먹은 후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만리장성에 가지 않으면 북경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만리장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유산이다. 동시에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은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묻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또한 만리장성은 지을 때 찹쌀을 이용했는데 이는 북방민족의 침입으로부터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만리장성을 관광 후 용경협에 도착해 초입까지 빵차라 불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거대한 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댐 위에 오른 후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섬산들과 협곡 사이를 지나가게 되는데, 위를 보니 그 높은 곳에서 묘기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외줄에 매달리고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다. 배를 타고 이동할 때는 협곡의 바람이 세서 좀 추웠다. 30여분이 넘는 시간을 배로 왕복했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용경협에서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간 곳은 기존의 중국식 식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있다면 오리구이가 전문으로 나왔다는 것.
식사 후 차를 마시고 드디어 기다리던 발마사지를 위해 이동했다.
발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나와 따뜻한 약물에 발을 담그게 하고 가볍게 풀어주었다. 이로 인해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시원한 기분으로 안식처에 도착, 강행군이었던 둘째날을 보내고 잠을 청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