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성주지역에도 결혼을 통해 지역으로 이주하는 여성들의 수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92명이던 ‘결혼이주여성’이 금년 3월 현재 1백24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4∼5월에만 49명이 추가 입국한 것으로 조사돼 총 1백73명으로 잠정 집계되는 등 증가세가 뚜렷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길목에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서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상호 이해와 노력이 시급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제화·세계화 시대를 주도하는 인재 육성 및 지역민의 평생교육의 기회로 관내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출신주부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이는 외국어 배움의 기회가 부족한 농촌지역의 학생들과 지역민들의 실력 향상은 물론 결혼이주여성의 생활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필리핀을 필두로 일본·베트남·중국 등 출신지별로 ‘숨어 있는 인재’들을 발굴해 정기적으로 연재키로 한다.【편집자주】
“교원 자격·교사 경력 보유한 학사 출신 외국인 주부
정착 5년 간 TV 시청 외에는 할 일 없어 지루한 일상
올 4월에야 가천초에서 영어 가르치며 삶의 재미 찾아”
“한국생활은 너무나 재미없는 일상일 뿐이었어요”
지난 2002년 결혼을 통해 지역에 정착한 성주읍 메이드림 씨(33)는 스무아홉해 정들었던 고향 필리핀을 떠나 인생의 제2막을 열었던 성주에서의 정착 초기를 이 같이 회고했다.
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문화와 언어마저 다른 세상에서 느끼는 심리적 외로움과 불안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다행히 성당에서 영어에 능숙한 대모(god mother)를 만나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음에 고마워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집에서 아기를 돌보거나 한달에 한번 정도 인근 도시에 정착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 외에는 온종일 TV 시청 외에 할일이 별로 없던 그때 인생의 재미를 찾기는 사실상 무리였다고.
특히 지난 2000년 노트르담 대학(Notre Dame of Marbel University, 영어 전공)을 졸업한 후 이듬해인 2001년에는 노트르담 고등학교에서 1년 간 남학생을 지도(자격증 보유)하는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해왔던 그에게는 지루한 일상으로 무척이나 힘든 나날이었다.
메이드림 씨는 “기본적으로 언어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의 답답함이 가장 힘들었다”며 “가령 피자나 치킨이 먹고 싶을 때 전화번호를 알아도 주문조차 하지 못하는 등 간단한 것 하나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소극적이었는데, 지금은 표현하는 데는 아직 어색하지만 듣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됐으며 이 같은 실력향상의 계기는 이제 6살난 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특히 딸을 소개할 때 wisdom 즉 지혜로운 이가 되길 기대하며 ‘지혜’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주었다고 말하며 딸에 대한 엄마로서의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온종일 딸과 같이 있다 보니 한국어에 미숙한 엄마 때문에 말 배우는 게 늦어져서 4살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며 “이제 커가며 숙제나 질문이 있어도 엄마가 대답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고 얘기했다.
다만 집에서는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대신 특기인 영어를 함께 가르치는 것으로 상쇄시킨다며, 평소에는 한국어로도 대화하지만 가끔 딸이 아파 보일 때면 “지혜, Are you sick?”하고 물으면 “I am sick”이라고 대답하고, “Do you have a headache?”에 “Yes. I have a headache”이라고 답하는 등 딸도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 역시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려고도 해봤지만 발음 등의 문제로 어려웠는데 지난해에는 새마을지회에서 실시한 ‘농어촌 외국주부 한국적응 프로그램’에 참가해 한국문화와 언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는 기회를 갖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해 한국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해 2개월 여 전부터는 가천초등학교에서 20명 정도의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고 하는 그는 “집에서 딸하고만 지내다가 드디어 나의 일이 생겼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며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유익하지만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에 영어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한 중·고등학생들도 지도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첫째로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달 정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자원봉사로 지도해 보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세상 어디에 있건 그 위치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메이드림 씨는 “특히 예의를 중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선뜻 손 내밀 줄 아는 매너가 자연스런 한국은 참 좋은 나라”라고 전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은 낯선 땅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즉, 배려심 깊은 남편 도재훈 씨와 딸 지혜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삶의 터전이자 제2의 고향이 됐다고 전하며 특히 손녀딸에 무한한 애정을 기울이는 시어머니와 자상한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관내에도 결혼이주여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들 가운데에는 모국에서 대학교육까지 이수하는 등 인재가 많다”며 “이들을 단순히 참외농사만 시키거나 집안일에 매몰시키는 것은 지역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따라서 농촌지역의 부족한 어학원과 상호 보완하는 해법으로 이들을 활용한 언어교육의 기회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지역에서도 해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어서 어른들을 위한 간단한 생활회화부터 아이들의 외국어교육까지 훌륭한 지도교사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