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
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
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있다
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
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놓은 것도 있다
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말소리가 방안 가득 돌아다니고
그들이 꿈꾸는 꿈의 색깔들도 어른거리고 있다
나는 그런 씨앗들의 거짓 없는 속삭임들이 좋아서
꿈의 빛깔들이 너무 좋아서
씨앗들이 있는 침침한 골방에서
같이 잠도 자고 같이 꿈도 꾸고 하면서
또 다른 만남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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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쌀 개방 협상을 반대하는 전국 농민들의 여의도 집회장에서 우리 안방 가슴에까지 전파로 날아와 박힌 속담 구호 한 구절이다. 농민에게 최후로 남는 것이 씨앗이고, 빈손으로 이 땅에 와서 윗대로부터 그걸 이어받아 소중히 키우다 자식에게 물려줌으로써 사람들을 널리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을 품어 안아 키우고 다시 제 품으로 거두어들이는 어머니인 `흙`과, 그 위에 살아갈 씨앗들을 땀흘려 준비하고 갈무리하는 아버지인 `농민`, 이 두 존재가 무한히 소중함을 우리는 잊고 있다.
이 시는 농민의 시다. 우리 어릴 적 수수께끼에 나오는 "밥 해 주고 밥 못 얻어먹는" 부 지깽이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온 농사꾼들이 땀흘리고도 홀대받아 오면서도 왜 땅과 씨 앗을 버리지 못하는지를 이 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씨앗과 한 몸이 되어 살고 꿈꾸며, 씨 앗을 자식처럼 소중히 보듬어 안는 농민들의 아름다움과 귀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찌 밥의 소중함을 알며 삶의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