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 서서 상수의 목소리가 젖는다 여린 눈길 흔들리며 더듬어갈 때 마주 떨리는 저 백여 개의 눈동자 두고 공업도시 울산으로 간단다 실직한 아버지 따라 무능한 시대의 뒷골목 먼지가 되어 바람에 휩쓸려 간단다 실내화를 꺼내 들고 교과서와 노트를 쌓아 들고 마지막 더운 밥그릇이 될지도 모를 도시락까지 챙겨 어깨에 걸고 상수는 내려앉은 뒷모습으로 문을 나선다 그랬다 바람 지나갈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천지사방 튀어 달아나던 아이들이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운동장 가득 새봄은 내려 설레는데 흐드러진 벚나무 숲길을 걸어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점 하나 봄 햇살 한 줌 작은 등뒤로 따라붙는다 -------------------------------- 상수는 이 시대가 낳은 실직자의 아이다. 아이는 이사 가기 싫어 '목소리가 젖'어 있다. 울고 싶은 것이다. 그 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위해 '교과서와 노트'와 '도시락' 같은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넣는다. 그 시간은 짧고도 길다. 순간이면서 영원히 기억 속에 각인되고야 말 그 순간을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다. 누구도 그 순간의 침묵을 깰 수 없었으리라.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 그 때 내 눈에 가물가물 잠기던 학교와 고향산천과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 지금까지 새겨져 있듯이, 그 때 나를 떠나보냈던 아이의 눈에도 울면서 떠나던 내 모습이 선연히 남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참 가슴이 아파서 읽을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시다. 이름 모를 소년 상수.....그 선생의 가슴에 남아 있는 소년 상수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 배창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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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 휴학하던 날


성주신문 기자 / sjnews5675@gmail.com 입력 : 2002/11/0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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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식 (시인)

아이들 앞에 서서
상수의 목소리가 젖는다
여린 눈길 흔들리며 더듬어갈 때
마주 떨리는 저 백여 개의 눈동자 두고
공업도시 울산으로 간단다
실직한 아버지 따라
무능한 시대의 뒷골목 먼지가 되어
바람에 휩쓸려 간단다
실내화를 꺼내 들고
교과서와 노트를 쌓아 들고
마지막 더운 밥그릇이 될지도 모를
도시락까지 챙겨 어깨에 걸고
상수는 내려앉은 뒷모습으로 문을 나선다
그랬다 바람 지나갈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천지사방 튀어 달아나던 아이들이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운동장 가득 새봄은 내려 설레는데
흐드러진 벚나무 숲길을 걸어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점 하나
봄 햇살 한 줌 작은 등뒤로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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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는 이 시대가 낳은 실직자의 아이다. 아이는 이사 가기 싫어 '목소리가 젖'어 있다. 울고 싶은 것이다. 그 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기 위해 '교과서와 노트'와 '도시락' 같은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넣는다. 그 시간은 짧고도 길다. 순간이면서 영원히 기억 속에 각인되고야 말 그 순간을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다. 누구도 그 순간의 침묵을 깰 수 없었으리라.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 그 때 내 눈에 가물가물 잠기던 학교와 고향산천과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 지금까지 새겨져 있듯이, 그 때 나를 떠나보냈던 아이의 눈에도 울면서 떠나던 내 모습이 선연히 남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참 가슴이 아파서 읽을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시다. 이름 모를 소년 상수.....그 선생의 가슴에 남아 있는 소년 상수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 배창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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