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아침
고층 아파트 단지 담밑 그늘에
사과 상자 몇 개 엎어놓고
사과, 배, 감, 귤을 무더기 무더기 놓고
젊은 아주머니가 아이 하나 안은 채
담요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바람은 낙엽들을 우수수 몰아가고
지나가는 어느 누구도 눈을 주지 않는다
푸석한 얼굴은 굳어 있다
붉게 익은 아이의 얼굴만 너무 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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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는 날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처량해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파트 담밑 그늘에 앉아 과일 몇 무더기 놓고 하루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냥 무심코 흘러가는 영화 속의 풍경 정도로 지나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풍경은 우리 나라 도시의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늘상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 아닌가. 이제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으로 옛날의 손님들은 바람에 낙엽이 몰리듯 '우수수' 몰려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 갈 길이 바빠서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들 앞에 발길을 멈추는 사람은 삶의 고통과 아픔을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본 사람들 정도이리라.
그래서 '젊은 아주머니'의 펴지지 않는 '푸석한 얼굴'과, 그 어머니의 고통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의 너무 맑은 얼굴이 시에 강한 빛깔을 칠해 주고 있는 것인가. 낙엽이 거리에서 사라져갈 때쯤 그들 앞에는 작은 연탄화로나 손난로가 놓이리라.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