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견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와사키중공업. 이곳에서 현장소장 보조 비서로 일하게 된다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덕환은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역할과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무리 배선만 군수님을 보좌하며 쌓은 경험이 있다지만, 일본의 중견기업에서 현장소장의 손발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결심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형이 쌓아온 신뢰와 자신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잡한 생각은 모두 접어두고 오직 맡은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소장님의 손발이 되어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겠다는 다짐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회사는 봉환 형제와 삼봉을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10평 남짓의 숙소는 작지만 안락했다. 덕환과 삼봉은 안정된 환경 속에서 회사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 보조 비서가 되다."당분간은 저와 함께 소장님을 수행하면서 업무를 익히도록 하세요."   쿠보 비서실장은 깔끔하고 완벽주의적인 외모와는 달리 업무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그의 태도는 덕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가와사키중공업의 마쓰모토 소장은 일본 전역 지사의 공장을 진두지휘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의 바쁜 일정은 곧 비서인 덕환에게도 체력적, 정신적 강인함을 요구했다. 덕환은 자신이 이 역할에 선발된 이유가 그의 다부진 외모와 성실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전쟁의 한가운데에서가와사키 그룹은 조선, 광업, 은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내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 물자를 생산하며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했다. 군용기, 전차, 대포 등 군수 장비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가와사키 그룹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다. 봉환 형이 이곳으로 올 당시에도 500여명이 왔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여 계열회사별로 선발하였는데 그중 400여명은 남쪽으로 다시 배를 타고 떠났고 봉환 형은 이곳에 남아 성실히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봉환 형이 덕환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광업부문으로 배정받아 갔더라면 넌 지금 나를 보지 못했을 거야." 그 말은 덕환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히 중공업 부문으로 배정받았기에 지금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 적응과 성장시간이 흐르면서 덕환은 빠르게 비서실 생활에 적응해갔다. 소장의 믿음도 두터워졌다. 이제는 비서실장의 도움 없이도 단독으로 장거리 출장을 수행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동 중에도 소장은 정부와 군으로부터 받은 요청서를 검토하고, 현장 지시 계획서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덕환은 그런 소장을 옆에서 묵묵히 지원했다. 지방의 계열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미토마 운전기사님은 덕환에게 따뜻한 형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소장님을 기다리며 시간이 날때마다 그는 덕환에게 일본 사회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며,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소장님 출장길을 수행하면서 일본의 큰 도시들을 오갈 때면 덕환은 고국에 대한 걱정과 열등감에 휩싸였다. 일본의 발전된 모습과 가난한 한국의 현실이 너무도 대비돼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선진국 일본의 활기찬 모습과 세계로 뻗어가는 대국의 기세에 고국의 현실이 걱정되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덕환에게 새로운 도전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 고향을 향한 그리움가와사키중공업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어갈 무렵, 팔월 대보름 오봉 명절이 다가왔다. 봉환 형은 고향에 두고 온 형수와 조카가 보고 싶다며 휴가를 내자고 제안했다. 덕환과 삼봉은 너무 기뻤고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고향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덕환은 결심했다. 어디에 있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언젠가 자신의 뿌리를 더욱 빛낼 날이 올 것이라고. 이 모든 경험이 그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종편집:2025-07-08 오전 09: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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