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장마가 걷히고, 파란하늘을 볼 수 있는 일요일 오전. 맑은 날씨만큼 마음이 상쾌하지 못하고 마음 한 곳이 나를 압죄하는 묵직한 그 무엇에 억눌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인 것은 왜일까?
얼마 전 나는 고향의 어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진정한 친구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인생의 깊은 주제 하나가 주어졌음을 느끼게 됐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것인가?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가 동료이자 친구인 관우를 다시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보내고 너무나 깊은 슬픔이 뼈에까지 스며들어 활동의 부자유스러움을 느낄 때 주위에서 치유와 요양을 권했지만 ‘나의 뼈가 아플 때마다 먼저 간 관우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오늘을 가파르게 자기위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고사의 한대목이라 할 수 있다. 아니 나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부여의 한 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이번 고향의 장례식장에서 유비와 관우처럼 끈끈하고, 진실하게 어우러진 친구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반성과 채찍에 부착시킬 수 있는 일들을 경험했다.
고향의 지인으로부터 김건영 전 성주군수가 쓰러져 지금 병원으로 이송중인데 위급하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흔히들 앞이 막막할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들 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심정으로 평소 존경하는 고향선배이자 사회스승인 삼정그룹 가야개발 피홍배 회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바쁜 업무 중에 나와 똑같은 전갈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슬프지만 차분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당신은 지금 즉시 성주로 갈 채비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바쁜 일은 핑계처럼 되어 버리고 깊은 의리와 선의를 갖고 살지 못한 졸인(본인)은 이튿날 저녁 이미 고인이 되신 존경하는 김건영 전 성주군수님의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감정도 얕고 가슴의 폭도 좁디좁은 졸인에게도 슬픈 무엇이 있었던지 요즘말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향 선후배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들 모두의 얼굴에서 슬픔과 애도 이상의 그 무엇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부하와 친구를, 가족을, 아니 전 성주 군민을 아끼고 사랑했던 고인의 인품이 가져다 준 존경심과 큰 별을 잃었다는 무겁고 안타까운 심정이었으리라.
영결식장의 한중간에 놓여있는 그의 영정이 마치 나를 보고 그 무슨 말을 건네고 싶은 심정의 얼굴인 듯싶었다. 잊지 못할 위인 김건영 님.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못난 후배의 넋두리를 들었는지. 절을 하고 일어설 때 또 한 번 그의 영정의 모습이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빈소에 잘 모르는 젊은 분들이 많이 있기에 누구냐고 주위 분에게 물으니, 삼정그룹 직원들이라고 귀띔한다. 그리고 장례식을 삼정그룹 회사장으로 할 것이라 한다. 간단하지 않다. 평소 살아있는 친구라면 이해관계의 상충 속에서 그리할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신 친구에게 나의 애정, 나의 의리를 보여줄 수 있음은 그리 쉽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 한다. 삶의 근원 속에서 나와 남, 그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보다 타인의 심정에서 이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경지를 넘어선 분들을 우리는 선인이라고 표현한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 피홍배 님! 당신은 선인입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도 개운하지 않으신데 마지막 가시는 당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보여주신 당신의 행동과 의식은 결코 당신 혼자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졸인(본인)은 서툴지만,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이 글을 쓰고 싶어 합니다. 당신의 친구에 대한 평소의 마음을 우리가 영원히 간직하고, 실천해야하는 정도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당신은 평소에도 늘 그러하시지만, 김건영 전 군수님의 장례식에서 우리 후배가 살아갈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하신 분입니다. 혼자 편안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늘 겸손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사소한 것으로 입씨름을 하지 말고, 서로의 뜻을 존경하면서 살라는 것이 당신의 메시지 인 것입니다. 이곳의 태양은 지지만 또 다른 어느 한곳에서는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이 돌고 도는 법칙 아닐까요?
고인이 되신 친구 김건영 님! 그것을 받아들이는 친구 피홍배 님! 당신들 사이에 또 다른 차원의 무언의 대화가 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땐 당신들의 의리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한 잔의 차와, 한모금의 숨 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땐 또 달리 승화된 친구의 우정을, 우리는 전 군민과 더불어 느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