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서남쪽에 위치한 성주. 옛 성산가야의 도읍지임을 과시하듯 토양과 주변 환경이 수려하다. 낙동강과 대가천이 빚어낸 옥토는 그야말로 비옥하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꼽으라면 국립공원 가야산이 빠질 수 없다. 영남의 명산이라는 수사에 걸맞듯 사계절 자연 병풍이 지역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이렇듯 천혜의 자연을 품은 고장은 10개 읍면, 111개 동리(법정리 기준)가 원형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연부락과 집성촌을 이루며 푸근한 인정을 나누는 면도 제법 된다. 회색 빛 도심의 뉴스가 아닌 정취로 가득한 농촌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스케치해 보았다.
▲선남면 관화리
인구와 농사
관화1∼3리에 터전을 두고 있는 주민은 약 290여호 670여명이다. 관화2리 이영표 이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의 인구는 최근 몇 년 새 소폭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리마다 들어선 2∼3곳의 공장이 인구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여느 면과 같이 주 농사는 참외재배다. 약간의 벼농사를 짓긴 하지만 소량에 불과하다.
올해 참외농사는 지난해만 못하다는 게 주민들 다수의 목소리다. 물론 모두가 적은 물량을 수확한 것은 아니다. 어느 때든 농사를 잘 지어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농가가 있기 마련이다. 관화2리 이모(62)씨는 "참외 물량이 적다고 하지만 지난해와 다름없이 많이 수확한 농가도 있다"며 부러워한 뒤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부지런히 가꾸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며 참외밭으로 분주히 향했다.
사람들
점심식사를 막 끝낸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하나 둘 자리 잡자 외로움을 달래주던 TV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이리저리 휘 몰아치듯 바쁘게 오고 간 담소의 주제는 옛 마을의 일상이었다. 그중 아직까지도 관화1리에 옛 모습을 갖추고 있는 빨래터가 할머니들의 기억을 새롭게 했다. 차가운 빨랫감에 손을 호호 불어야 했던 젊은 시절 까마득한 추억은 미소로 번졌다. 지금도 물은 흐르지만 너무 오염된 터라 더 이상 빨래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말끝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하게 주고받는 대화였지만 할머니간 나이 차는 엄연히 존재했다. 한 가족처럼 모인 자리에는 관화리 최 고령자 2명도 함께였다. 백발의 김종필(92) 할머니는 "18세에 시집왔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며 세월이 무상하다고 했다. 또 유순락(92) 할머니는 "가마 타고 시집온 지가 엊그제 같다"면서 "나이는 많지만 아직 건강한 편인데, 성주의 맑은 공기와 참외 덕분으로 생각한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지명유래
△관화리=1634년 이화춘이란 선비가 이 마을에 입향해 정화리라 하였다. 원래 성주군의 오도방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관산동, 정화동, 대흥동 일부와 선남면의 동천동 일부를 합병했다. 선남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고, 관산의 관자와 정화리의 화자를 본 따서 관화라 하고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게 됐다.
△정화리=관화1리의 자연부락명. 덤섬 동쪽 부분의 마을인데, 그 앞 부분의 선남초등학교가 있는 곳을 안산, 덤뒤 등으로 부른다. 심방산 아래의 마을로서 약 60여호의 가호로 이루어져 있다. 이화춘이라는 선비가 이곳을 개척할 당시 샘물이 양호하고 주변에 괴화나무가 무성해 정화라 이름하여 왔다고 한다. 성산 이씨의 집성마을이다.
△덤섬이, 덤뒤(대흥동)=관하2리 자연부락명. 선남면 소재지 북쪽 큰 마을의 서편으로 남향한 마을이다. 마을 앞에 덤섬이라는 바위 셋이 있어서 덤섬마을로 부른다. 성산 이씨, 김해 김씨, 밀양 손씨 등 40여호의 가호로 이루어진 부촌이다. 마을 뒤 산중턱에 바위가 많이 산재해 있다고 해 덤더리라 했다가 그 후 이태연이라는 선비가 입향하면서 크게 일어나라는 뜻에서 대흥이라 개명하였다 한다.
△안산(내산·교동)=관화2리 자연부락으로 정화리 마을의 안쪽이라고 해 안산이라 부른다. 선남초교가 건립되어 상가가 들어옴으로 인해 일명 교동이라 한다. 약 10여호의 가호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말티=관화3리의 자연부락이다. 선남면 소재지 동쪽 들 건너 표고 120m의 낮은 산줄기 사이 고개를 말티고개라 한다. 말티재는 소학리와 도흥리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마현은 그 아래 마을이다. 약 10여호의 가호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감사가 부임지에 말을 타고 넘는다 해 말티 또는 마현이라 명하여 왔다.
△떡뫼=관화3리의 자연부락. 선남면 소재지 마을이고, 관화리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김용화란 선비가 주막을 개설해 독가로 있다가 1927년 면사무소가 이설 됨에 따라 남북으로 트인 30번 국도변에 마을이 크게 이루어졌다. 마을 동편은 넓은 들 건너 말티고개의 산자락이 감싸고, 서쪽은 동암리가 백천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다. 독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약 100여호의 가호로 이루어지고, 뒷산을 떡뫼라하여 독산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취재에 적극 협조해 준 선남면이장상록회 이영표 회장(관화2리 이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