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돌 듯 늘 반복되는 일상.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뒤엉킨 스트레스를 풀어놓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어디가 좋을까. 방전돼 버린 생활의 여유를 재충전할 수 있는 금수면 봉두리를 추천한다. 탁 트인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분주 복잡했던 마음에 시원한 봄바람이 이는 곳이다.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마을
30번 국도를 타고 면 소재지를 지나 봉두리에 다다를 즈음이면 품에는 자신도 모르는 선물이 한아름 안겨져 있다. 무슨 선물인가 풀어볼 새도 없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먼저 피어난다. 눈길 가는 곳마다 펼쳐진 자연 그대로의 풍경화가 일상의 긴장을 까맣게 잊어버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손님을 반기듯 도로 양쪽에 줄지어 선 느티나무는 하나같이 녹색 옷을 차려입고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마치 잎사귀 하나하나가 눈웃음을 치는 듯하다. 녹색 잎사귀에 고스란히 내려앉은 자연의 색은 푸근해진 마음을 이내 즐거움으로 바꿔 놓는다. 절로 가슴이‘뻥’뚫린 기분이 든다. 사랑을 독차지하는 느티나무에게 시샘이라도 하는 듯 봄바람이 일렁이면 보는 이의 눈은 더욱 싱그러워진다. 잠잠해지기는커녕 바람을 등에 업은 나뭇잎들이 더욱 하늘거리는 춤사위를 펼치며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푸른빛은 더욱 진해진다. 하늘 아래 산이 있고, 또 계곡을 끼고 자연부락이 형성된 터라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푸른 세상이다. 마치 사방에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 몸을 감싸는 따뜻한 기온과 상쾌한 봄바람, 그리고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까지 더하면 천국이라는 수사도 아깝지 않아 보인다.
오염되지 않은 골짜기
가만히 귀 기울이면 인기척보다 새소리가 더 잘 들린다. 거주하는 주민이 많지 않아 소란스러운 일도 드물다. 또 몇 안 되는 가구가 거주하다보니 주변 환경이 깨끗할 수밖에 없다. 주거지와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산에는 온갖 나물이 돋아 있다. 마을 앞뒤 실봉과 녹정골에는 쑥, 고사리, 머위, 각종 취나물 등이 많다. 때에 따라서는 몇 포대씩 채취하기도 한다. 탁월한 맛과 영양이 알려져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네 시간여 취재한 지난달 29일 잠시만 하더라도 산나물을 뜯기 위해 대구에서 온 6명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어르신은“올해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 찾아왔다”면서 “산나물의 향도 너무 좋고, 마을도 어머니 품처럼 푸근해 시간만 나면 자주 찾는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봉두리 이문환 이장은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송이를 채취하려는 외지인들을 종종 보게 된다”면서 “현재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객이 천국이라 부르는 곳
봉두리는 성주댐 수몰지역 마을이다. 1992년 댐 완공 이후 가호 수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날래미 등 6곳의 자연부락에 17가호 30여명이 살고 있다. 성주댐 수몰 이전에는 청주한씨 22호, 성산이씨 12호, 경산이씨 10호, 김해김씨 6호, 인동장씨 5호, 이밖에 45호가 거주한 것과 비교하면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 자연부락 구성골이 댐으로 인해 수몰되는 등 대부분의 터전이 물에 잠겼다. 이곳에 살던 주민은 대구로 나가거나, 선남면 용신리 이주 단지로 옮겨 갔다. 봉두 1 2리로 구분됐던 마을도 하나의 봉두리로 통합됐다.
지금은 70∼80대 고령의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40대 중후반 장년층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워낙 골짜기고 사람이 많지 않아 참외재배는 이루어지 않는다. 농가마다 벼와 고추, 콩, 들깨 등을 가정에서 먹을 만큼만 농사짓고 있다. 식당 운영과 염소 사육을 선택해 귀농한 가구도 일부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보니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은 일출, 일몰시간과 비슷하다. 어렴풋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일을 시작하고, 어두워지면 동네가 적막하리만큼 조용해진다.
낮 동안 읍 나들이를 하려는 어르신은 마을버스에 오른다. 골짜기여서 버스가 자주 다니지는 않는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네 차례 운행되는 게 전부다. 그것도 가천에서 다시 갈아타야 하는 탓에 어르신의 불만이 적잖은 편이다. TV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불편일 수 있다. 이곳은 난 시청 지역이어서 위성 접시 안테나가 없으면 지상파 방송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가정에 접시 안테나가 설치돼 있는 이색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이문환 이장은 “주민이 많지 않은 오지라고 보면 된다”면서 “그만큼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라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천국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취재에 적극 협조해 준 봉두리 이문환 이장과 파티마노인복지센터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