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벌건 요오드팅크를 잔뜩 바르고 의병제대 여부를 판정하는 심사관들 앞에 섰다. 나는 대학시절에 병역연기 혜택으로 대학원과정까지를 무사히 다녔다. 석사학위과정을 마칠 무렵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같은 입장에 있던 친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재 연기신청을 하는데, 나는 어차피 다녀와야 할 곳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녀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수원지역에서 집결한 후배들과 함께 논산행 기차를 탔다. 배치된 곳은 육군논산훈련소 제 23연대. 머리를 깎고 군번을 타고나자 곧바로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함께 입대한 대학 1년 후배 S군은 마음씨가 곱고 착할 뿐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나는 모범 크리스천 청년이었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추석이 임박했다. 나는 S후배와 함께 식사당번을 했다. 소대원에 식사를 다 공급하고 대형 목제 밥통을 씻으러 수도 물가에 가는데 마침 그 지역을 경비하던 기간사병을 만났다. 그냥 우리 할일만 하면 되었을 터인데 이 S후배가 기간사병을 향하여 일을 시켜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때 주먹이 S후배의 배를 치면서 “이 새끼 사람 놀리는 거야?”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소대원 위생 점검을 한다고 다 모였는데 문제의 S후배가 안 보이는 것이다. 알고 보니 화장실 분뇨청소 작업에 동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아끼던 나는 급할 때 쓸려고 소중하게 숨겨 놓았던 양담배(말보로) 한 갑을 들고 이 친구를 구하러 화장실 작업장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는 화장실 탱크에서 운반용 똥통에 분뇨를 퍼내어 분뇨트럭에 실어 올리는 힘든 사역을 하고 있었다. 기간사병에게 가져 간 담배를 드리고서 S후배가 점호를 받을 수 있도록 보내달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친구는 그 담배 때문에 분뇨제거 사역으로부터 풀려났고 점호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외 손바닥에 딱지처럼 붙어 있는 똥떼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에 우리 소대원은 며칠간이나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을 마친 다음 나는 대구 부관학교로 배치되었는데 후문에 의하면 이 S후배는 일선으로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30년 동안 우리는 서로 소식을 모르고 지났는데 내가 농대학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S후배가 달려와서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부관학교에 있는 동안 외출하며 광제이비인후과 원장으로 계시던 전성억 동문의 아버님을 찾아갔다. 실은 내가 곧 미국 어느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하여 I-20 form을 받아 놓고 있는데 이렇게 군대생활을 오래 계속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 말씀을 드렸다.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는지 찾아보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귀대한 지 며칠 안 되어 군의관실 오대위가(나는 지금도 그분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를 불렀다. “내가 자네 유학 가는 길을 적극 도울 터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라는 너무나 기분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얼마 안 되어 나는 대구에 있는 제 2육군병원 이비인후과로 후송되어 갔다. 그 병원은 의병제대를 할 사병들이 전역판정을 기다리는 병원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밥이 적다고 불평하는 내과환자들, 신문을 서로 먼저 보겠다고 싸우는 안과환자들이 가득 찬 곳이었다. 말하자면 나이롱환자가 그렇게 많더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1개월 후 어느 날 나는 귀에 벌건 요오드팅크를 잔뜩 바르고 의병제대 여부를 판정하는 심사관들 앞에 섰다. 심사책임을 맡은 J중령께서 내 귀를 보더니 “이 새끼 귀는 다 썩었구먼”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끝내 한 계급도 진급하지 못한 채 부관 이등병으로 9개월의 짧은 군대생활을 마치고 말았다. 군번은 10212012. 이제 누가 병역비리로 나를 고발한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다시 군대에 입대시키지는 않겠지?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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