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정부의 초청을 받아 온타리오 강변에 있는 퀘벡 주의 조그마한 도시에서 자취를 할 때였다. 우리나라가 88올림픽게임을 유치한 후였다. 그 당시 몬트리올 올림픽이 엄청난 적자를 보아 부동산세를 인상하고 담배 특별소비세를 부가하는 등 서민 생활에 핍박을 가하고 있을 때이니 우리나라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몬트리올 올림픽처럼 적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이런 연유 등으로 해서 “몬트리올 올림픽 결산”이란 과제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몬트리올 올림픽게임이 왜 적자가 되었으며 현재 연방정부의 외면 속에서 퀘벡 지방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몬트리올 행 기차를 타기로 하였다.
기차표를 예약한 그날따라 밤새 눈이 내린 후 날씨가 갑자기 급강하여 시내는 온통 교통체증이 일어났고 제설차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가까스로 오타와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교외를 달리니 마음은 한결 상쾌해졌다. 차창 가에 비쳐진 시골의 풍경 들, 그리고 눈이 그동안 얼마나 쌓여있는지 길가의 전봇대는 끝으로 1∼2미터만 보였고 끝없이 펼쳐진 대지는 하얀 눈에 덮여 적막하게 보였다. 목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서있는 싸일로는 마치 흰 바다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였다. 기차는 한동안 설경 위를 힘차게 달리는 듯 했으나 갑자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횐 들판 위에서 멈춰버렸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여객전무가 나타나면서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지금 기관차의 제너레이션이 고장 나 고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 15분이 지났다. 차창에는 성애가 서리기 시작했고 객실온도가 점차 내려가기 시작하니 승객들은 제각각 잠바나 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그때 또 다시 여객전무가 지나가면서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직 좀 더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수리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차수리가 완성되면 커피를 공짜로 대접하겠습니다” 하고 지나갔다. 시간은 벌써 30여분이 지나갔다. 바깥 기후는 돌변하여 심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모든 승객들은 코트 등을 걸쳐 입은 채 쥐 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다.
열차 창문에는 성애가 서렸고 나는 두 손을 다리 사이에 넣고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이따금 이웃 칸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때 불현 듯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았다. 분명 잘난 사람들이 일어나 욕설을 하고 야단법석이 아니었을까 상상하면서 옆 사람에게 왜 불평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뜻밖에도 “불평을 하면 차가 빨리 수리되느냐”고 내게 되묻는 게 아닌가?
나는 할 말을 잃고 이곳 손님들의 의식수준은 분명히 우리보다 앞섰구나 하고 내심 감탄을 하고 있는데 발동기 걸리는 소리가 났다. 승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여객전무를 맞이했다. 여객전무는 약속대로 직접 커피포트를 들고 일일이 승객에게 커피 한 잔씩을 따라 주면서 “손님여러분! 용케도 잘 참아주셨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고장이 잘 수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주면서 지나갔다. 여객전무는 물론이고 모든 승객들의 입에서도 만족의 웃음이 피어났다. 그 때 영하의 추위 속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마신 한 잔의 커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였다.
이날 마신 커피향내가 이렇게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활기를 넣어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열차 속은 금방 훈기가 맴돌았고 차창에 얼어붙었던 성애가 녹아내리면서 승객들은 하나 둘 입었던 코트를 벗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그 커피 맛과 향내는 나의 뇌리에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그 후 몬트리올 올림픽 결산이란 나의 프리센테이션은 “수입을 감안하지 아니한 과다 투자로 인해 엄청난 적자 올림픽을 시현한 퀘벡주 정부와 몬트리올시 당국에 대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말았다”는 나의 촌평은 많은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때 그 논문은 한국에 와서도 발표한 바 있다.
연말의 유학생활은 정말 바빴다. 세미나나 발표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뻥 뚫린 듯 허전하기만 했다. 그럴 때면 두고 온 산하와 가족들이 그리움으로 피어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주 캐나다 한국대사의 초청만찬이 있었다.
눈 덮인 대사관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었고 모처럼 갈비찜과 김치로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는 거실에 모여 들은 고향소식과 흘러간 옛노래가 그동안 울적했던 향수의 눈시울을 젖게 했다. 이것을 인지상정이라 했던가. 만찬이 끝나 대사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홀 밖으로 나오니 창밖에는 함박눈이 하염없는 그리움으로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