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생활에서 문화라는 말이 보편화 되었다. 물질문명의 대칭어인 정신문화에서 말하는 고전적 사전적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관용적으로 쓰게 된 하나의 용어로 자리 잡은 ‘문화’를 말함이다. 식사문화도 있고 아파트 문화도 있다. 그 중에 ‘술의 문화’ 만큼 풍성한 인간관계와 잠언적(箴言的) 담론도 없다. 무릇 문화라는 공간적 영역이 광범위하여 추상적 개념이 되기 쉽지만, 금번 이상희(李相熙) 전 장관의 노작 ‘술-한국의 술문화’는 한 마디로 술에 관한 모든 것의 백과총서(百科叢書)라 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도 손에 잡힐 듯한 술의 정의와 상세한 기록의 저작물이다. 다시 말하면 시류가 만든 이른 바 포퓰리즘의 산물도 아니고 세정(世情)의 상업주의는 더더욱 아닌 이 기획 출판물이야말로 명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대작을 보고 어쭙잖게나마 감히 무어라 느낌의 일단을 적고자 했지만 외람되기도 하고 대단히 조심스럽기도 하여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서평이 아니라 절로 나오는 감탄을 어쩌지 못해 미치지 못하는 내 역량에도 불구하고 독후감이라는 이름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찬탄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보고 공부하고 또 배워보고자 함에 그 본뜻이 있다고 하겠다. 저자에 의하면 10년 준비 끝에 상재(上梓)했다고 한다. 술에 관한 희귀한 문헌과 사진 자료를 찾아 산간 오지도 누볐다고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도 일목요연하게 집대성한 그 열정과 박학다식함에 먼저 머리가 숙여진다. 그런 옛 자료가 있어도 문외한이거나 잘 몰라 까딱 잘못 했으면 영원히 사멸(死滅)될 뻔한 사실에서는 더욱 이 저작물의 진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도 방대한 자료라서 무엇을 어떻게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 술의 발견, 즉 생성에서부터 어원, 계주교서(戒酒敎書), 계영배(戒盈杯), 명현과 노인 봉양에 뜻이 있다는 향음주례, 주국헌법에서의 코믹한 표현에는 웃음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은근히 풍기는 엄정한 음주 규율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나, 지우들끼리 주석에서 ‘후래자삼배’라는 말이 바로 이 주국헌법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는 무릎을 치게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나는, ‘술과 인간’하면 그저 피상적으로 오래 전부터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풍류와 멋, 기지와 해학 등으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자양이 되어 왔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선비도와 풍류하면 신라시대의 유상곡수(流觴曲水, 이도 근자에 와서 주워들은 얘기) 정도이고 조선시대의 장진주사, 여기다 조금 더 나아가면 가무음곡에서의 해어화 쯤이나 알고 있던 나였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술이 있는 곳엔 언제나 벗이 있고 벗이 있으면 시가가 있어 주붕이 지기상합(酒朋 知己相合)하여 학문을 토론하고 학단을 이루어 고결한 사상을 기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번잡한 현실을 잊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다 보면 장진주사 같은 시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정도였다. 그런데 술에 관한 대전(大典)같은 이 저작물은 내 얕은 식견으로도 학위 논문이거나 학문 연구서, 아니 그 이상의 노작이 아닌가 한다. 거기다 시정인이 마구 쓰는 술에 관한 질탕한 이야기로부터 시대를 넘나들며 주호들의 담론을 망라한 이 저서야말로 명저이기에 충분했다. 우리 민족 무형의 자산인 고시조, 여기엔 술과 관련된 것이 대단히 많다. 박주산채, 완월장취, 정좌수와 성권농(鄭座首, 成勸農)과 같은 음주의 멋과 풍류와 운치를 떠올리게 하는 고시조 몇 수는 듣고 배웠지만 이 저작물로 인해 내 짧은 견문이 더욱 넓어지는 계기도 되었다. 수 년 전 지인의 혼사에 갔더니 바로 이 분이 주례사를 하고 있었다. 여느 식장과 같이 서두를 열 때는 다소 분위기가 산만했지만 참으로 금과옥조 같은 주례사가 이어지니 꽉 메운 하객들이 숨죽여 경청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판에 박힌 듯한 대개의 주례사와는 다르게 쉽게 들을 수 없는 주례사였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인간의 삶과 함께 해온 술, 그 문화도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이다. 어쩌면 역사와 문화는 동의어인지 모른다. 이 ‘술문화’의 역사성에도 우리들에게는 큰 가르침이 있다. 나쁜 역사는 버리고 좋은 역사는 배워가는 것이 역사의 본령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저작 대미 부분의 술에 관한 음담과, 정곡을 찌르는 ‘국민교본’ 같은 고사성어는 이 책의 압권이기에 충분했다. 원래 고사성어는 그 자체로도 만인의 교과서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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