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변 구릉지에서 휴전선 지킴이를 한 지도 어언 반 백년이 넘었다. 철조망도 쳐지지 않았던 그 시절 남방 한계선 밖에서 여름, 가을, 겨울에 걸친 4개월여간의 휴전선 근무는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삶이었다. 고라니, 노루 등 산짐승과 기러기, 오리 등 철새 그리고 강물 속에 무한정으로 헤엄쳐 다니던 물고기들은 비무장지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진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분대원 수 6∼7명에 불과한 진지 속에서 수냉식 기관총 옆에서 시간 간격으로 이상유무 보고를 하며 야간이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총성에 따라 긴장을 하고 몇 시 방향 괴한 출현으로 보고하는 것이 일과였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는 중대원 대부분이 한글을 겨우 깨우친 무학이었다. 서무계, 교육계 등 행정요원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에서 학보병으로 지원한 나로서는 일찌감치 서무계일을 도맡았다. 나의 일과는 총을 메고 산 넘어 3km정도를 걸어서 대대본부에 나가서 일보를 작성하는 것이고 간혹 군사우편이 있으면 수발하는 것이 전부였다. 중대원에게 보내온 편지는 소대별로 부식 수령 차 나오는 전령을 통하여 배달하곤 했으나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도 수없이 많았다. 편지를 써준 대가로 주머니 속에 감춰둔 김 한 장을 얻어 먹기도 했고, 소대본부에 초대되어 산토끼, 붕어찌개를 대접받기도 했다. 늦여름부터는 산딸기가 익기 시작하여 입이 빨갛도록 따먹다가 일보작성이 늦어져 엉덩이가 불이 나게 맞기도 했다. 중대본부 막사는 도치카 속에 있어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 우의를 덮어쓰고 자야했고 중대본부 사무실에도 전등이 있을 수 없다. 석유램프를 켜고 야간근무를 해야 했다. 가을이 되면 갈대를 베어 와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어야 했다. 연도 말이 가까워지면 후방에서 보내온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수령하여 각 진지를 돌며 철모 속에 편지를 넣어 눈감고 골라잡기를 하고 간혹 여학생의 편지를 뽑은 사병은 환호를 하기도 하면서 휴전선 근무를 마쳤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도 그때 그 시절에 근무한 휴전선 생활이 꿈 안개처럼 어려 온다. 그러던 중 6월 어느 날 통일로의 최북단 임진각에서 개최된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시인들의 열린 시낭송회’에 초대를 받았다. 대한민국사람이면 누구나 갈구해 온 평화통일이라‘휴전선’이라는 시 한수를 써서 꿈안개 속 휴전선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조건 없이 동참하기로 했다. 통일대교 입구에서 곧장 유엔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들어갔다. 도로 양옆에는 지뢰 위험표지가 여전히 걸려 있었고 도라전망대 고개 길 중턱에서 평양입성 선봉부대 전진부대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부대 앞을 지나 도라전망대로 올라가 망원경을 통해 멀리 송악산과 개성시가와 가깝게는 판문점, 경의선, 북한군 막사, 남북직통도로, 비무장지대와 개성공단현장을 바라보았다. 휴전이 된 지도 어언 반세기가 넘었지만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천만여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들의 한이 가시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경의선 복원공사가 준공되어 벌써 몇 개 성상이 흘렀으나 본래의 목적은 언제 이루어질지 요원할 뿐이다. 도라산 역에는 부시대통령의 통일기원 철로받침대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역구 내외를 둘러본 후 임직각으로 이동했다. 임진각은 도라산역이 신축되기 전까지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란 철도의 중단점이었고 6.25 전쟁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자유의 다리로 이동했다. 임진각 내방객들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하는 곳이 아무래도 자유의 다리인 것 같다. 망배단 북쪽의 통일연못을 가로지르는 낡은 나무다리는 한국전쟁의 대표 유산으로서 50여년만에 개방이 되었다. 자유의 다리 입구에 들어서니 왼쪽으로 나란히 서있는 ‘나의 조국’이란 시비와 ‘망향(望鄕)’이란 시비를 읽고 있는데 흰 턱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한분이 다가온다. 망향의 시비를 건립한 인소리(印少里 ) 시인이었다. 두고 온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90세를 바라보는 노인은 시비 건립 경위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자유의 다리 밑 연못가 파고라에서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詩人들의 열린 시낭송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휴전선’이란 시를 낭송하였다. 늘 꿈속에 어렸던 휴전선은 분명 현실이었고 사라져야 할 분단의 비극이었다. 머언 하늘 끝 저쪽 철망 너머 북녘 땅 어젯밤 꿈 언저리 어머님 통곡소리 들린다. 임진강물에 실어 띄운 혈육의 정 못내 아파 철책선 산 비알에 핀 들국화도 고개 숙였네. 누구라 눈 뜨고 바라 볼 소냐 북으로 가는 철새 떼 차마 끊긴 소식 전해줄까 혼자 우는 억새풀 백년 천년이 가고 또 가도 살아만 있어다오 부모형제 눈물로 얼룩진 나날들 녹슨 철조망 걷힐 그날 북에 둔 피붙이들 두 팔 벌려 내 맞으리.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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