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에 서울의 인사동 이문안에는 널리 알려진 목로술집이 하나 있었다. 이 집은 철종의 막걸리를 궁 안에 대어 그 주인이 선달이란 벼슬을 얻게 되자‘선달이 도가’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또 이 집에는 당대의 시객(詩客)이요, 호주가( 好酒家)였던 정수동( 鄭壽銅)도 단골로 다니던 집이었다. 이문안은 종로의 예전에 화신상회가 있었던 뒷골목을 가리킨다. 이 목로술집은 이 집에서 빚은 막걸리의 맛도 아주 좋았지만 술국이 특별히 맛이 있다고 해서 새벽부터 손님이 붐볐는데, 이곳엔 양반들도 곧잘 들러서 먹기도 했다. 이 술국은 오늘날의 해장국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선지나 양을 넣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쇠뼈다귀를 오랫동안 끓인 후 거기에다 된장을 풀고 배추 우거지, 콩나물, 토란 줄기 등을 넣어서 우려낸 국이다. 당시는 술국을 안주로 하여 막걸리를 곁들여 마셨는데 이것이 해장술이다. 이문안에는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내면서 세도를 떨쳤던 김병국( 金炳國)대감 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 댁의 문객이 모여 앉아 하는 소리를 들으니 이문안 선술집 술국은 대감 댁 곰국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대감은 그 술국을 한번 먹어 볼 생각으로 어느 날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청지기나 하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탕건만 쓰고는 동저고리 바람으로 뒷문으로 나와 소문의 선술집을 찾아갔다. 새벽부터 선술집에는 손님들이 법석대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대감도 막걸리 한 잔과 술국을 시켜서 먹어 보니, 과연 그 맛이 진미였다.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하여 먹고 나서 생각해 보니 동저고리 바람에 나오느라 돈을 한 푼도 안 가지고 나왔다. 주인은 대감이 먹은 술과 술국의 값은 세 푼이라고 했다. 당황한 대감은 난처한 표정으로 주인에게“내가 깜박 잊어버리고 돈을 안 가지고 나왔으니 조금 뒤에 한 돈을 가져다 주겠소”라고 말했다. 한 돈이면 열 푼인데 대감은 다급하고 미안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술집 주인은 식전 마수걸이에 무슨 외상이냐고 하며 나중에 열 푼도 필요 없으니 당장 돈을 내고 가라고 난리를 쳤다. 난처해진 대감은 그럼 아이를 하나 딸려 보내면 집에 가서 돈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한참 바쁜 식전에 돈 세푼 받으러 아이를 딸려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감은 점잖은 처지에 도망은 갈 수도 없고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는데, 한 헙수룩한 막벌이꾼이 이 광경을 보고 주인을 불러 타일렀다. “보아하니 점잖은 분이신 것 같은데 이따가 갖다 달라고 그러지 뭐 그러나?”하지만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저분이 우리 집 단골손님 같으면 서 푼 아니라 열 푼이라도 긋고 가시게 하겠지만, 생면부지에 처음 와서 술에다가 술국까지 먹고 나서 이따가 주겠다니 그건 또 무슨 경우야!”주인의 입에서는 곧 욕이라도 나올 판이었다. 그러자 막벌이꾼이 대감을 대신해서 돈 세 푼을 내주는 것이었다.“내가 대신 낼 테니 저분을 가시게 하게”대감은 몹시 고마워서 그 사람에게“당신 성씨나 압시다”라고 했지만 막벌이꾼은“돌려 받으려고 낸 것이 아니니 성은 알아서 뭘 하겠소”하며 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문안 골목의 훈훈한 인정이었다. 대감이 집으로 돌아와서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늘 마음에 두었으나 영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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