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에 인간이 처음으로 출현했을 때는 문자보다는 말이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갓난아기가 글자보다는 말을 먼저 배우는 이치와 같지 않을까 한다. 문맹자가 태반이었을 적에도 말은 잘 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더욱 현존하는 언어가 6,900개나 된다는데 그 중에 6,600개는 문자는 없으면서 언어만 존재한다는 사실로 보아도 언어 즉 말이 먼저였음을 확실하게 한다.
말의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나는 새, 기는 짐승, 하물며 미물도 그네들끼리 소통하는 언어가 있다. 이른바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들끼리 공통된 언어가 없을 때의 의사소통은 손짓 발짓과 그 표정 등으로 실로 다양했을 것이다.
마치 지금의 외국인을 만났을 때의 바디랭귀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다가 소통의 기능을 넘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정한 룰(규정)도 만들게 되었을 것이며 약속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보전을 위한 기록도 필요하게 되어 최초의 글자라는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함무라비 법전의 설형문자가 생겨났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과 글! 오늘에 와서는 하루도 쓰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글은 영구히 보전의 수단으로, 말은 즉석 울림의 효용으로 그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말,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존재이다. 소통만 하던 시대의 원시적 기능이 아니라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열 마디의 주변을 맴도는 말보다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의 속담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같은 말이라도 듣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문일침(頂門一鍼), 삼사일언(三思一言) 같은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같은 역기능도 있다. 어느 한 시대의 정치인들은 ‘막말’을 좀 많이 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곧 진행형이다. 그들은 아예 이성이라거나 지성이라는 말은 거추장스러운 듯 폭력 수준의 말을 마구 쏟아낸다. 순화라는 가면을 쓴 독설을, 이른바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스스럼없이 휘두른다. 오죽 했으면 ‘어록’을 만들었을까.
막말을 받은 상대는 더 험악한 말을 쏟아낸다. 대수롭잖게 시작한 언쟁이 끝내는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치 인간은 항체(抗體)로, 병원체는 내성(耐性)으로 끝없이 각축하다 종내는 어느 일방이 백기를 드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 음식은 아무거나 먹고 말은 가려서 한다는 등의 잠언(箴言)은 참으로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인간관계에서 조크(익살)와 위트(재치있는 말)는 대단히 중요한 생활의 지혜이고 윤활유이다. 아마도 인지의 발달이 소통의 기술을 넘어 말의 기교로 진일보한 언어영역이 아닌가 한다.
난제도 많은 인생사에서 때로는 촌철살인이듯 호쾌하게 해법을 찾기도 하고, 껄끄러운 대인관계를 일거에 해결하기도 하고, 오도(誤導)되는 중론을 반전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삭막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툭! 내뱉듯 던지는 위트 한 마디는 언어생활의 향기와 활력소가 된다.
다중이 모이면 그 중에는 재담을 잘 하는 사람, 좌중을 웃기는 익살꾼, 깨소금 같은 양념이듯 감칠맛 나게 구사하는 말의 마술사도 있다.
승패보다는 관중 서비스 차원에서 펼치는 스포츠도 있다. 이름하여 올스타전, 야구 9회말 안타 한 방이면 승패가 갈릴 판인데 타자가 친 공은 야속하게 펜스를 넘고 말았다. 공을 따라 전력으로 뛰던 수비수가 망연히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털썩 주저앉아 글러브 낀 손으로 땅을 치며 애석함을 연출하면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까? 어차피 승패보다는 팬서비스의 의미가 더 크니까.
어느 날의 주차장 풍경. “오라이… 빠꾸…”하며 아버지가 수신호로 차를 유도하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으니 아들을 심히 나무라고, 이를 본 길 가던 사람, “거 봐 영어로 하니까 못 알아듣지”라든가, 출타했다 돌아온 아버지가 두 아들을 보고 강아지 밥 주라고 하지만 서로 미루기만 하니 이를 본 아버지는 “강아지야, 그럼 니가 갖다 먹어!” 했다는데 이거야말로 유머와 위트의 참모습이 아닐까 한다.
다음의 두 예화는 유머와 위트의 가히 결정판이기에 끝으로 적는다.
세기의 위대한 영국의 정치가 처칠이 만년에 와병 중일 때 정치 초년병이 문병을 왔다. 그는 완쾌하여 오래 살라는 뜻으로 “내년에도 뵐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라고 했더니, “이 사람아 자네가 먼저 죽으려고…?”.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재임 중일 때 저격을 당해 병원에 누워 있었다. 병원을 찾은 낸시 부인에게 그 특유의 호방한 웃음으로 “여보 미안해. 내가 총알 피하는 것을 깜빡 잊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