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은 유교와 선비문화의 본고장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영남의 큰 고을 성주의 역사와 전통 되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대표적 누각인 ‘임풍루’ 복원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임풍루는 1451년(조선 문종 원년)에 건립되고 1592년(조선 선조25년) 임진왜란 시에 소실된 후 현재까지 재건하지 못한 것으로, 복원사업은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성주문화예술회관 앞 야산 5만㎡의 부지에 내년부터 2개년 사업으로 20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군은 금번 복원을 통해, 영남루와 촉석루에 버금가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을 건립하고 생활체육소공원·산책로·쉼터·조명시설 등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27일 성주의 상징물 임풍루 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9월 20일 군정조정위원회에서 사업계획을 확정했고, 지난 10월 14일 성주군의회로부터 공유재산 관리계획 승인을 받는 등 복원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임풍루 복원을 위해 상징물로서의 가치를 제고하고 이를 고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각종 문헌과 관련자료 수집에 심혈을 기울여 나감과 동시에 관련 대학교수·관계전문가 등으로 「임풍루복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 운영해 본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창우 군수는 『성주군은 고대에는 6가야의 하나인 성산가야, 고려시대에는 경산부를 거쳐 성주목, 조선시대에는 성주목으로 한때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했고, 사통팔달한 교통로와 행정의 중심지로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된 큰 고을이었다』며 『또한 이에 걸 맞는 화려한 역사·문화적 유적이 많이 건립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려시대 외적의 침입,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동란 등 큰 전란으로 대부분 소실됐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어 성주를 상징할 수 있는 역사·문화유적 복원이 시급하다 』고 덧붙였다.
이에 금번에 그 첫 단계 사업으로 천지인(天地人)의 자연관에 입각한 유교문화의 생활철학과 선비정신이 깃든 성주목의 대표적 누각이라 할 수 있는 「임풍루」를 복원하게 된 것이라고.
이밖에도 앞으로 성주역사문화박물관건립, 성주사고 복원, 제말장군·김창숙선생 등 충신애국지사의 동상건립, 이조년·이직선생 등의 시조비 건립, 가야산성복원, 한개마을의 전통민속마을 조성 등 성주를 상징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사업을 장기적으로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풍루는 1451년(조선문종 원년)에 당시의 성주목사 이중에 의해 건립됐으며 1455년(세조 3년)에 영의정 정인지가 기문을 지었으며 조선 중종조의 우찬성 강혼의 감상을 담은 제영(題詠)이 남아 있고 1568년(선조 원년)에 성주목사 김윤제가 중건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시에 안타깝게도 소실됐다.
경산지에 의하면 임풍루는 성주목의 중심 관아로써 고을수령이 매월 임금에게 예를 올리고 고을을 찾는 귀빈을 접대하던 객사의 부속 누각으로, 그 북쪽에 위치하고 중층의 격식을 갖춰 조선시대 성주의 중심부에서 도시의 경관을 결정하는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영의정 정인지의 기문에 「임풍루는 화려하고 높은 것이 꿩이 나는 것 같고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아서 우뚝하게 고을의 장관이 되어 비로소 영남루·촉석루와 아름다움을 다투게 되었다」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규모와 아름다움은 영남루·촉석루와 비견될 수 있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누각으로 성주목의 상징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성주군은 임풍루를 복원해 성산고분군·세종대왕자태실·선석사·심원사·독용산성·회연서원 등 문화유적과 연계해 관광 벨트화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건설될 가야산야생화생태식물원·가야산 7층 전망탑, 성밖숲 생활체육문화수변공원·선남참외홍보탑 만남의 광장 등과 함께 관광테마 코스를 개발해 성주를 역사문화관광의 중심지로 발전, 관광수입과 함께 성주참외 집중 홍보로 주민소득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