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3호-사랑한 우리말(1)에서 이어집니다.) `썰매`는 설마(雪馬)가 변하여 된 순우리말이다. `수제비`는 우리 전통 이름인데, `수(手·손)`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이 합쳐져 `수접이`가 되었고 이가 변하여 수제비가 됐다. `세답(洗踏)`은 빨래의 원말이다. `세답족백(足白)`도 있는데 이는 상전의 빨래에 종의 발꿈치가 희게 된다는 말로, 남을 위하여 한 일이 자신에게도 이롭게 됐다는 뜻과, 일을 하고도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 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사약(賜藥)`은 `死약`이 아니라, 왕족 또는 사대부가 죄를 지으면 임금이 약을 내린다고 해서 `賜약`이다. 낮은 지위의 죄인들은 교형이나 참형을 당했는데, 당시 유교사상에 따라 죽은 자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으며 `신체발부수지부모 (···)`라는 관념에서 명예로운 죽음과 관련이 있다 했다. `시룻번`은 시루를 솥에 얹어 올릴 때 시루와 솥이 맞닿은 틈에서 김이 새지 않게 하기 위해 쌀무거리나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발랐는데,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떡을 다 찌고 나면 그걸 뜯어먹기도 했다. 그걸 먹으면 얽은(곰보) 신랑·신부 맞는다고 어른들이 못 먹게 하는 낭만(?)스러움의 시절도 있었다. `식겁(食怯)`은 뜻밖에 놀라 겁을 먹는다는 표준어인데 하도 많이 격이 낮게 쓰니까 방언인 줄 알았다. `을씨년스럽다`는 몹시 쓸쓸하고 스산하다는 말이다. 1905년 을사년 늑약의 수난의 역사를 당한 것이 을씨년스럽다고 탄식하다 보니 `을사년`이 `을씨년···`이 됐다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오려쌀`은 올벼의 쌀인데 보리양식이 햅쌀이 나기 전에 떨어짐을 대비하기 위해 올벼를 심었고 이 쌀을 오려쌀이라 했다. 조선 숙종 때 이정보의 시조 `오려 논 물 실어놓고 면화밭 매오리라 (···)`라는 고시조가 있는 것을 보면 그때부터 오려쌀이 있었던 것을 알게 한다. `아자미`는 이모와 고모를 공통으로 부르는 호칭의 옛말이다. `아잠씨` `아줌씨` 등을 지금도 시장 같은 곳에서 쓰고 있지만 아주 비칭으로 쓴다. `영여(靈與)`는 시체를 묻은 다음 신주와 혼백을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 지금은 그런 장례절차도 없지만 6·25 전후만 해도 그런 장례풍속도 있었는데 그땐 사투리로 `잉여`라 했다. `이내`는 해질 무렵에 멀리 흐릿하게 낀 푸르스름한 기운을 말하는데 그 다음날은 어김없이 비가 왔다. `음식디미방`은 궁중에서 `음식맛을 봄(지미·知味)`을 일컬었던 말인데, 330여 년 전 경북 영양에 살았던 여중군자인 정부인 장씨(장계향·1598~1680)가 음식 조리에 관해서 쓴 책이다. 오늘에 와서 그곳 영양에서는 관광상품화한 것이라 한다. `알나리 깔나리`. 나이 어린 사람이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면 선배에게 이른바 신참례를 치뤄야 한다. `나리`는 권세를 가진 사람에게 아랫사람이 붙이는 호칭인데 이때 신참례를 치르려는 어린 급제자를 `알`에서 겨우 깨어났다고 해서 알나리가 됐고, 이걸 더 희화화하느라 깔나리를 덧붙인 게 아닌가 한다. 지금은 속어로 얼레리 껄레리로 쓴다. `앙괭이`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잠자는 아이의 신을 신고 간다는 귀신인데, 보채고 우는 아이 어를 때 `앙갱이` 온다 했다. `앵미`는 악미(惡米)의 변한 말인데, 쌀 속에 불그스레한 빛갈의 나쁜 쌀을 말한다. 벼 자체부터 다르다. `쥐코 밥상`은 아주 간단하게 차린 밥상을 말한다. `지렁이`는 환형동물인데 지룡(地龍)이라고도 하니 어느 말이 먼저 쓰였는지 모르겠다. `집주름`은 조선시대 부동산 중개업자를 부르는 이름인데 18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소개료율도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는 거래가의 0.8%라 했다. 가쾌(家儈·거간꾼)라고도 했다 한다. `죄암질`은 젖먹이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재롱을 이르는 말이며 그를 `죄암죄암`이라고 하고 `잼잼`이라고도 쓰고 있다. `진지`는 윗어른에게 일컫는 밥의 높임말인데 진지라는 말 들어본 지 오래다. 부처님 밥은 잿밥, 귀신의 밥은 메, 저승사자 밥은 사잣밥, 천지신령은 노구메, 임금은 수라, 죄수는 구메밥이란다. 죄수들은 벽 구멍으로 넣어준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조바심`은 겁이 나거나 걱정이 돼서 마음 조마조마하게 졸임을 말함인데, 쌀알 크기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수습하려는 일이니 자연히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는 데서 나왔다는 게 그 어원이다. `저선생(楮先生)`은 종이가 귀한 시절 그 종이를 높여서 달리 이르는 말이다. 원료가 닥나무(楮)여서 붙은 이름인데 윗사람에게 자기 편지를 편저(片楮·종이쪽지)라 쓰기도 했다. ‘저택(瀦宅)은 대역 죄인이나 강상(綱常)을 어긴 죄인의 집을 헐고 물을 채워 소(沼)를 만드는 형벌의 하나이다. `좨기`는 데친 나물이나 가루 반죽한 것 조그맣게 뭉친 것인데, 어렵던 시절 이웃 간에 나물 한 점이라도 나눠 먹어야 할 시절이니 많이 달라고 할 수도 없어 `나물 한 지기만 주이소···`를 나도 듣고 보고 자랐다. `책거리`는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훈장 앞에서 배운 것을 강(講)하며 스승의 가르침에 고마움을 표하던, 의례적 사도(師徒)의 길이었다. `책씻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풋바심`은 나락 보리 등 곡식이 채 익기 전에 베어 양식을 마련하는 일인데, 가난했던 시절에 썼던 절박한 말도 이제는 사라지려함에 나 같은 `라때`는 좀 야릇하다. `파대(破帶)`는 가을철 논밭의 새를 쫓기 위해 짚으로 땋거나 꼬아 그 끝에 삼, 말총 또는 짐승 가죽을 매어 단 줄이다. 그 줄을 머리 위로 빙빙 휘두르다가 거꾸로 힘껏 내려치면 총소리와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걸 새때 쫓는 데 썼다. 몹시 격하여 내팽개치는 행위를 `패대기친다`고 하는데 이도 이 파대에서 파생됐다. 그때 부르던 이름도 있었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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