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우거진 들풀이 거침 없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파 헤치며
이랑과 고랑을 삼키고 있다
숨을 멈추고
그 속에 들어가
나도 한 풍경이 되었다
들풀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나의 거대한 숲이었고
작은 돌멩이 하나는
큰 바위였고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은
동화 속 작은 호수 같았다
움푹 파인 고인물은 강이었고
땅벌레 한 마리는
두더지 같았다
바닥에 귀를 대니
난초의 낮은 소리가 들리고
햇살 익어가는 누런 호박줄기도
땅을 헤집고
힘차게 넓은 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창밖엔
가을바람이 쏟아지고
코스모스 꽃은 피고지면
내년 이 맘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몸부림 치며 살아온 생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