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태어나서 84년을 사셨다. 대저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다. 태어남은 밝음이요 죽음은 어두움이다. 육십년을 함께 삶을 같이 하신 어머니는 한 말씀도 없다. 어느 한 구석 어둡지 않은 곳이 없는 무표정이다.
한국전쟁 때는 제주도에서 군인 생활을 시작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운이 좋았던지 능력이 되었던지 미군부대에 배속되었다. 부대에서는 손재주를 인정받아 공병 병과를 받고 목공일을 하는 군인이 되었다. 모든 기계나 도구들이 모두 미제다. 옷 하나도 국산은 없었던 시절이었다. 전쟁 때 인지라 군인 신분은 오년이나 유지되었지만 부상 한곳 없이 무사히 제대하였다. 제대할 때는 덤으로 목수라면 갖기를 부러워했던 일체의 장비와 도구도 챙겼다. 톱, 대패, 망치, 끌 등등 어린 내가 보기에도 신기한 모든 것들이 미제였다.
자연스레 그는 목수가 되었고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좁은 시골 향리에서는 도 목수라는 호칭을 받기도 했다. 첫 딸이 태어나고 대를 이어줄 맏아들도 태어났다. 대개 큰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도 생존본능에서 후손을 많이 생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비부머라는 전후세대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에도 전후세대들이 일시에 정년이 되면 노동의 공급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슬하에 삼남 삼녀를 둔 목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하나 없었지만 종전 후의 시류를 잘 타서 재주있는 목수일로 처자식을 건사 시키는 데는 애로가 없었다.
목수의 아들이 동년배 친구들한테 어릴 적에 보리밥 안 먹고 자랐다고 하면 엄청 부잣집 아들인 줄 안다. 지금도 한가지 의아한 것은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더 이상 목수일은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고 목공장비를 담아 보관하던 이장통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맏아들이 고등학생 때 목수는 과년한 딸을 잃었다. 딸이 타고난 명이 거기까지 이었나보다. 그 당시 첩첩산골 구석진 동네에서 살았어도 영어로 인사 건넬 줄 알았던 그 양반이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미련한 구석이 있었다. 딸이 열병을 앓고 있는데도 차일피일 하다가 도시의 큰 병원으로 입원시켰을 때는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얼마나 애통했을까? 목수의 아내는 대명천지 밝은 대낮에 오가는 인파 속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세월은 아무리 모진 고통도 덮어준다. 어떤 힘든 구석도 세월이 가면 잊히게 되어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속담이 그저 생겼겠는가? 천수답 스무 마지기는 팔아야 살 수 있는 돈으로 백 리 길이나 떨어진 도시, 대구에 집도 마련했다. 맏아들은 은행에 취직했다. 일개 군에서 은행원이 서너 명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자식농사 제대로 지었다는 덕담을 들으며 목수 내외는 평범한 삶을 보전했다. 슬하의 새끼들을 짝지어 보내고 부부는 외롭지 않은 시골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여행이라는 말이 호사스럽게 여겨졌던 때에 자식들의 효도를 받는답시고 천리먼길 이국땅 구경도 다녔다. 노년에 들어 손자새끼들도 하나 둘 머리가 굵어지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맏손자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경찰간부로 임명될 때는 두 눈 지그시 감고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이제 쥐구멍에도 볕이 드는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마침내 목수는 돌아가셨다.
한옥 다섯 칸 큰 기와집은 맏이의 살림자리가 되었다. 십여 년을 목수의 흔적을 치우고 치워도 구석구석 쌓아둔 물건들은 버리고 나면 반드시 쓰일 자리가 생기는 머피의 법칙 비슷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목수가 불혹일 때 못 박아두었던 그 연장 상자는 창고 구석에서 수십 년을 자리하고 있었다. 연장통을 열어보니 이미 녹이 쓸어 못쓰게 된 것도 있었고 아직은 쓸 만한 미제 도구들도 있었다. 연장통 밑바닥에 눈에 띄는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여는 순간……
어느 유명세 날린 변호사 어머니의 온전 저금통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무상자 안에는 한 웅큼은 될 성 싶은 금반지 꾸러미가 있었다. 빛을 바랜 채로. 금반지는 필시 어느 가정의 고래 등 같은 집을 지을 때 상량식에 올려진 금붙이가 분명하다. 한 집안의 부귀안녕을 빌면서 복채로 낸 금반지를 그만큼 지니고 있었으니 후손이 무탈하게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석 자리에서 세월을 지켜본 황금은 아버지의 유산이다. 오신 곳으로 가셨지만 자식이 눈을 감는 날까지 살아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