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살다보면 억지로 욕심을 가지고 무리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기 분수에 맞는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직선으로 반듯하게 잘 닦여진 큰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곡선으로 휘어지고 좁은 고갯길을 걸어가는 인생도 있게 마련이다.
운명을 결정짓는 어느 한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때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두 갈래 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그것은 자신만이 책임져야하는 것이리라. 생각하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후회도 해보지만 그게 운명이고 필연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리라.
언젠가 행사장에서 시낭송가인 아리수예술단 정광흠 단장이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갈래길이라는 시를 낭송하였는데 감명 깊게 들었던 적이 있다.
- 두 갈래길 -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는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굽어 꺾여 내려 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릴 적 꿈을 키우며 걷던 시골길이 생각난다.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를 가려면 구불구불하고 좁은 십리길을 매일 걸어 다녀야했다.
그 좁은 길 저 너머 넓은 세상으로 눈을 들어 바라보았던 순수하고 해맑았던 그 소년은 어느덧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어 추억을 더듬고 있다. 세월이 덧없이 흐르는 동안 지금의 고향마을은 옛날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변하였고 언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런지 기약도 없다.
그때 두 갈래 길에서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나는 선택했었지, 시 구절처럼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고 후회를 하고 있는가 하고 내 자신에게 가만히 물어보는 중이다.
동네 공원에는 수도 없이 만들어진 여러 갈래길에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혼자 걷는 사람도 있고 두세 사람 함께 어울려서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아줌마부대도 있고 애완견을 끌고 나와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리고 운동기구를 이용해서 몸을 만드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남자들 모습도 보인다.
나는 만보기 숫자를 확인하면서 걸음에 힘을 실어본다. 지나온 길을 자꾸 되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잘 가야겠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걸으면 새로운 희망길이 되지 않을런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