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온다 배 띄워라
배는 애당초 비어있었다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맨땅에 뜨는 배는 없으니까
노도 없는 배는 망망대해가 두려웠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실을 것인가
채워야 할까
비워둔 채로 항해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까
배는 깊은 산골에서 읍내로 옮겨졌다.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도 모른 채로. 지구가 얼마나 큰지도 몰랐다. 아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넓은지도 몰랐다. 이십 리 길을 걸어서 통학을 하다가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었다. 걸어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시절에 자전거는 혜택받은 선물인 것이다. 배에 책도 싣고 꿈도 실었다. 아주 작은 목표라는 것도 생겼다. 아마 그때는 그것이 일생일대 최고의 목표였을 것이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쪽배에 노 하나를 준비했다. 방향을 잡을 키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터득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배를 띄웠다. 제법 모습도 갖추게 되고 같이 항해할 동반자도 맞이했다. 항해를 맡길만한 항해사도 생겼고 보호해야할 승객도 생겼다. 순항이었다. 나날이 행복했고 웃음이 가득한 스위트 쉽이었다. 언제라도 방향만 설정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배는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많은 행복을 실었고 주인은 너무 많은 욕심을 실었다. 과분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가라앉거나 좌초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순풍에 돛 단 듯 했지만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주인은 떠날 준비가 된 승객부터 하선을 시켰다. 다른 배로 옮겨 보냈다.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균형을 잡아갔다. 물이 새는 곳은 수리도 받았다. 낡았으니 당연하게 보수를 받아야 한다. 허리가 부러지고 닳아빠진 노도 새로 구입을 했다. 이제는 보호해야 할 승객이 없는 허전한 빈 배에 달랑 두 사람의 늙은 나그네만 타고 있다. 노련한 항해사는 절대로 풍랑을 맞지 않을 것이다
물 나간다. 닻을 내려라. 쉬었다 가자.
성주신문 기자 / sjnews5675@gmail.com
입력 : 2021/04/21 00:00
↑↑ 석 종 출
펫헤븐AEO 대표
ⓒ 성주신문
물 들어온다 배 띄워라
배는 애당초 비어있었다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맨땅에 뜨는 배는 없으니까 노도 없는 배는 망망대해가 두려웠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실을 것인가 채워야 할까 비워둔 채로 항해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까
배는 깊은 산골에서 읍내로 옮겨졌다. 앞으로 어디로 갈 건지도 모른 채로. 지구가 얼마나 큰지도 몰랐다. 아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넓은지도 몰랐다. 이십 리 길을 걸어서 통학을 하다가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었다. 걸어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시절에 자전거는 혜택받은 선물인 것이다. 배에 책도 싣고 꿈도 실었다. 아주 작은 목표라는 것도 생겼다. 아마 그때는 그것이 일생일대 최고의 목표였을 것이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쪽배에 노 하나를 준비했다. 방향을 잡을 키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터득했다.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배를 띄웠다. 제법 모습도 갖추게 되고 같이 항해할 동반자도 맞이했다. 항해를 맡길만한 항해사도 생겼고 보호해야할 승객도 생겼다. 순항이었다. 나날이 행복했고 웃음이 가득한 스위트 쉽이었다. 언제라도 방향만 설정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배는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많은 행복을 실었고 주인은 너무 많은 욕심을 실었다. 과분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가라앉거나 좌초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순풍에 돛 단 듯 했지만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주인은 떠날 준비가 된 승객부터 하선을 시켰다. 다른 배로 옮겨 보냈다.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균형을 잡아갔다. 물이 새는 곳은 수리도 받았다. 낡았으니 당연하게 보수를 받아야 한다. 허리가 부러지고 닳아빠진 노도 새로 구입을 했다. 이제는 보호해야 할 승객이 없는 허전한 빈 배에 달랑 두 사람의 늙은 나그네만 타고 있다. 노련한 항해사는 절대로 풍랑을 맞지 않을 것이다
물 나간다. 닻을 내려라. 쉬었다 가자.
성주신문 기자 / sjnews5675@gmail.com입력 : 2021/04/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