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미군정 때 초대 안호상 문교부 장관이 취임하고 보니 3·1운동 기념행사는 해야겠는데 기념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 박종화에게 작사를, 작곡가 김순애에겐 작곡을 청탁해서 나온 노래가 최초 3·1절노래였다. 1948년 건국 정부 수립이 되고 1950년이 돼서야 각 국경일 행사 노래 모두를 정인보 작사에 박태준이 작곡했으므로, 거기 3·1절노래도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두 3·1절 노래가 있었던 셈이다.
처음 3·1절노래 작곡한 김순애는 4·19노래도 작곡해 공식 행사에서 불렸다. 그런데 70년대에 와서 기념행사 곡을 들어보니 또 새로운 노래가 나와 어리둥절한 일도 있었으며, 그래서 김순애 곡은 안타깝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4/4박자인 그 곡을 간혹 쉽게 흥얼거린다. 당시 중학과정 야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깨우치며 함께 불렀기 때문이다. 나도 자유당 독재를 비난했을, 정의(?)의 20대 초반이었으니···.
《학도는 용감하다 거룩한 피를 흘려/ 민주주의 만방에 현양하였네
독재는 물러가라 외치는 고함소리/ 방방곡곡 천지에 선양하였네. (2절?)》
우연의 일치인지 어제 중앙 일간지에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 교수의 `김순애` 얘기가 실렸다. 6·25가 끝나갈 무렵 잡지 `학생계`가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를 싣고자 박목월에게 작시를, 김순애에겐 작곡을 부탁해 탄생한 노래 말이다. 전쟁 통에 피아노도 없는 방에서 곡을 썼다니 가슴이 아린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된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날 봄(희망)을 그리려는 작시였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또 얼마전 일간지엔 서지학자 김연갑이 한 고서점에서 입수한 자료, "광복 직후의 `조선애국가요집`"이 실렸다. `애국가`도 있었으며 `조선의 노래(이은상 개사 현제명 작곡)`, `독립행진곡(박태원 작사 김성태 작곡)`, `조선의 노래(이운치 작사 나운영 작곡)`, `인민의 소리(임화 작사 나운영 작곡)`, `아침해 고흘시고(임학수 작사 김성태 작곡)` 등이었다.
현제명의 `조선의 노래`는《백두산 버더나려 반도 삼천리/ (이하는 내 기억으로)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내린 우리 삼천만/ 복되도다 그의 이름 조선이로세》였다. 여학생들이 이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할 때였다. 남녀 구분이 명확할 때 남학생은 놀이는 못 하고 짓궂게 훼방만 놓다가 싸우는 일도 있었다. 노래와 놀이가 모두 기억되니 더욱 새롭다.
고무줄놀이는 또 있다. `해방가`로 알려진 `독립행진곡` 《어둡고 괴롭구나 밤도 길더니, (···), 동무야 잘 자고 일어나거라, 산 너머 바다 건너 태평양까지, 아아 자유의 종이 울린다.》어릴 적 기억이 살아나긴 했지만 이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 유감이다. 정말 유감스런 노래는, 제목도 생각 안 나고 한 소절밖에 모르는 "···조선의 동무야 우리 동무야···" 이다.
또 제목도 모르는 노래,
"동해에 푸른 물결 빛나는 아침/ 찬란한 붉은 태양 새날이 밝아/
지축을 울리누나 희망의 노래/ 유구히 이어오는 역사 반만년/
아아 슬기로운 무궁화 동산/ 억만년 길이 빛날 우리의 나라"가 있다.
김연갑의 가요집엔 없는 것,《1.이 땅에 한복판에 우뚝한 이 산, 단군님 우리 시조 나리신 이 산, 번성한 우리 민족 갈고 심으며, 큼직한 우리 조선 새로 이룬다. 2.천지에 흐르는 물 바다가 되고, 연지봉 이는 구름 비를 내린다 (···).》도 있다. 해방 전후에 인쇄된 `조선`으로 쓴 교과서를 받았는데 정부수립 이후엔 `조선` 글자 위에 `대한`으로 캡처한 교과서로 배웠던 것이다.
추억도 새로운 노래 또 있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힘차게 약진하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 청년아 나가자 민국 번영에, 힘차게 울려라 평화의 종을 우리는 백의민족 단군의 자손.》 이는 음악 교과서에 있었던 노래인데 지금에 이나마도 뇌리에 남아 있음에 신기할 따름이다.
이상은 그 애국가요집에 실린 것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것을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할, 의미있는 노래가 있는데 몇 소절만 떠올라 참으로 애석하다. 어렴풋 생각나지만 제목 `일민(一民)의 노래`인 것만은 또렷하다. 그때 `일민구락부`라는 정당도 있었다 한다.
작사는 독립운동을 한 민세 안재홍 선생 같긴 한데, 분명한 기억을 못해 대단히 송구하다. 광복의 새 나라를 이끌어갈 절절한 `희망의 노래`인데, 이나마도 찾은 기억에 오류는 없는지 참 안타깝다. (노래는 부를 수 있지만.)
《1.동방의 태양이라 빛나는 아침/ 오로지 一民의 이상 밑에서
남녀상하 차별 없는 공정한 길로/ 너도나도 한 백성 하나로 살자.
2.구원히 이어갈 우리의 나라/ (······)
빈부귀천 차별 없는 (······)/ 우리들은 한 핏줄 하나로 살자.》
어쩌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한 지표를 그때 예견한 건 아니었을까 한다. `기회의 균등` 등이 오늘의 `핫이슈`이니 말이다. 나는 이렇게 부화뇌동(附和雷同)이나 하는 게 내 자질의 한계인가 보다.
시 서 화와 영화 등 어느 예술 영역이든 모두 역사적 함의가 있다. 특히 시가(詩歌)에는 다른 영역보다 큰 울림이 있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