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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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다. 사람은 그 길에서 나고 그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하고 눕는
다. 살던 고장을 떠나 먼길을 걸어온 시인은 아직도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멀어질수록 그리워지고, 돌아가고 싶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살던 길이다. 그곳을 떠나 떠돌이로 살아온 길 위에서 얻은 슬픔의 무게와, 끝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응시하는 시인의 눈길이 만나서 깊은 성찰과 울림을 가진 아름다운 시(詩)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