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성주군협의회(이하 민주평통)에서 광복80주년의 뜻깊은 행사로 우리 민족의 후손이 이국만리에서 뿌리내리고 삶을 이어가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과 함께하는 평화통일 간담회 및 민주평통 카자흐스탄지회와 자매교류 협약식`을 갖기로 했다.
우리의 여정은 6월 30일(월) 인천에서 밤 비행기에 몸을 실고 카자흐스탄 알마티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의 늦은 시차 관계로 숙소에서 밤을 맞이해야 했다.
다음날 고려인들의 이주 정착지인 우슈토베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들은 이른 아침 분주히 준비해서, 우슈토베를 중심으로 바슈토베의 고려인 마을, 한-카 우호공원내 항일독립운동가 추모비, 고려인 공동묘지, 기차역을 방문할 예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우슈토베로 가는 5시간의 긴 시간 동안의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끝도 없이 넓은 들판을 보며 고려인들이 어떻게 정착을 할 수 있었는지, 얼마나 황망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을 소개하면, 세계에서 9번째(한반도의 12배, 대한민국의 27배)로 땅이 넓으며, 인구는 2,084만여명(대한민국 5,168만여명)에 불과하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독립, 약140여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로 여기에 우리의 고려인도 포함 되어있다. 나라 이름 뒤에 `~스탄`이 붙으면 이슬람교가 주종교인 나라이며, 카자흐스탄도 73%가 이슬람교인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인구수가 적어 사회복지제도가 잘되어 있으며, 국민성은 바쁘지도 않고, 욕심도 없으며 여유롭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는 연해주(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살던 이주민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으로 인해 한 달을 거쳐 도착한 이주민들의 첫 정착지이다. 9만5천여 명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으며 나머지 이주민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지로 이주했다.
드디어, 바슈토베의 고려인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반짝이는 흰머리를 가진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헬렌 선교사(82세)와 고려인 2세, 3세대 여러명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헬렌 선교사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고려인기념관과 고려인 정착시 토굴을 둘러봤다. (구)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1937년 추운 겨울 입은 옷만 걸치고 영문도 모른 채 캄캄한 화물 기차칸에 실려 우슈토베역(첫 정착지)에 내려졌으며, 고려인들은 이곳 우슈토베의 바슈토베에 토굴을 파고, 갈대를 엮어 지붕을 만들어 견뎌내며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가야하는 힘든 시기에도 고려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토지를 대여해 주고, 3년 안에 건물을 지으면 토지를 무상으로 지급해 주었다. 고려인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정착할 수 있으며, 2세대, 3세대까지 5만여명에 가까웠으나, 현재는 대도시로 많이 나가 4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 2세대들의 한글과 한국문화를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 열정적인 노력을 하고 계시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간담회에서 정착생활에 대해 들으며, 고려인 2세대의 "나는 생김새는 러시아 사람처럼 생겼지만, 내마음은 고려인이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담회를 마친 후, 고려인 후손들이 직접 준비해 준 한국식 국시(국수의 고려인 표현)와 만두, 김치, 깍두기, 과일을 함께 먹으며 감사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