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다녀온 후, 덕환과 형들은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봉환형은 형수와 입학을 앞둔 만준이, 삼봉형은 고향의 가족들 생각에 한숨을 쉬었다. 언제 돌아갈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타국 생활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 앉았다.
한편 일본의 태평양 전선은 일본 해군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해군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한 이후,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남방작전을 개시해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석권하고 저항하는 영국 해군을 격파하며 인도, 호주까지 위협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의 패배를 기점으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재건된 미 해군의 반격과 거듭되는 일본 해군의 패착으로 남방의 보급은 불안정해졌고, 점령지 대부분을 상실한 채 본토 앞까지 내몰리게 됐다. 항복을 거부한 일본 제국 수뇌부는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 등에서 격렬한 저항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전쟁무기 조달과 병력차출을 위해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 필리핀, 대만 등 점령국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착취는 극에 달하였다.
덕환은 마쓰모토 소장에게 상부에서 내려지는 지시와 분위기를 통해 일본의 불리한 전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는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총동원되었고, 직원들은 극심한 피로와 압박에 시달렸다.
연합군의 파상공세에도 일본이 항복하지않고 저항하자 결국 미국은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소련의 만주 공세가 더해지며 일본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 이후, 일본은 연합국에 점령당하고 기존의 체제가 해체되었다.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자들은 처벌되고 협력자들은 공직에서 추방하였으며, 거대 재벌들이 해체되었다. 가와사키 그룹도 해체되었고 직원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환은 형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