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잔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 순간 뽀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거리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 할머니들이 봄날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인다. 햇볕은 할머니의 주름살에도 앉고 눈 에도 따스하게 스며들고, 온몸 어디 내리지 않는 곳이 없이 환하다. 할머니들은 햇볕 속에 서 주름살을 얼굴에 새겨넣고 펴 보는 눈깜짝할 사이 한 생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우주의 역사 시간으로 지속되어 온 햇볕과 잠깐인 우리 인생의 대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봄날에 다시 시작하는 할머니의 삶을 햇볕이 폭포처럼 쏟아져 흘러 어루만지고 있고, 그 빛이 움직이는 곳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손에 만져질 듯 부드럽다. (배창환·시인)
최종편집:2025-05-14 오후 0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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