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국예총 광명시지부가 주관하는 제7회 대한민국 서예한마당 현장휘호대회가 광명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400여명의 중견 서예인들이 참가한 대회에 성주 월항면 지방리 출신 이상철씨가 참가해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현장휘호대회’란 주최 측에서 미리 지정한 명제(命題) 중에서 택일해 현장에서 작품을 쓰는 독특한 방식이다. 땅바닥에 엎드려서 주최 측에서 배부해 준 화선지에 써야하는 까다로운 조건과 30여명의 엄선된 심사위원의 채점 결과를 객관적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즉석에서 대형스크린에 공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대회에서 당당히 특선을 한 연암(延岩) 이상철(李相喆, 72)씨는 스승에게 사사(師事) 받은 적은 없고 오로지 본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습작을 거듭해 온 노력파다.
이씨는 30여년을 재단법인 홍익회에서 공직생활을 했고, 상무이사를 끝으로 10여년 전 정년퇴임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10여년 꾸준한 자학독습(自學讀習)으로 각종 공모전에서 20여회의 입선과 특선을 하기도 했다.그 중 두 차례에 걸친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서예부문에 입선’과 금번 ‘현장휘호대회 특선’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서예를 하게 된 동기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서예에 일가견(一家見)을 가지신 선친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유년시절 봐 온 아버님은 종중(宗中)의 대소사에 수많은 글씨를 남기셨습니다”라며 “각종 비문(碑文)과 상석문(床石文), 그리고 현판(懸板) 글씨 등 서예에 한하여 모두들 아버님의 손길을 필요로 했지요”라고 말한다. 그 때 어깨너머로 조금씩 본 것이 동기가 되었고, 형제가 모두 서예에 조금씩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씨의 부친은 오래 전 월항면과 대가면 부면장을 지냈고, 성주중학교 서무과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호산(湖山) 이진원(李鎭源)씨다.
이상철씨는 지금까지 국전(國展)을 비롯한 공모전에서 특선과 입선 경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 선친의 필력에는 한참 못 미치는 졸작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그러면서도 서예인으로서 최고의 목표인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를 날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귀띔해준다.
유명 스승의 지도를 받은 바도 없이 오로지 선친께서 정신적 스승이시고 본인의 집념과 노력을 더해 이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성주를 빛낸 자랑스러운 우리의 출향인이다.
이씨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붓을 놓지 않고 더욱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고, 요즈음은 종로에서 건축사업으로 성공한 죽마고우(竹馬故友) 박재호(주 종합건축사 藝盛 회장) 회사 사무실에 자주 들러 살아가는 이야기로 기분전환을 하며 아이디어도 창출한다는 것이다.
부인 최송자 여사(67)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자영업을 하는 아들은 분가해서 살고, 현재 직장생활을 하는 딸과 함께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최종동 서울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