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소대원이 탕에 들어간 뒤 나는 무려 세 개의 팬티를 껴입고 목욕탕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고된 논산 육군훈련소의 훈련도 종반전으로 접어든 어느 날 편지가 한 장 날아왔다. 우리가 그렇게 다정하게 지냈던 함인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인왕산으로, 관악산으로 산행을 같이 하고, 어느 여름방학 때는 우리 고향이며 경주여행도 같이 했던 다정한 친구이기도 했다. 낙후된 농촌과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손을 잡고 기도하던 믿음의 친구였고 내가 고등고시 기술과 시험을 치던 때는 나를 자기 집에 머물면서 시험 치러 다니게 배려해주던 자상한 그 친구가 어찌 이렇게 갑자기 우리와 유명을 달리 한단 말인가? 졸업 후에 그가 한국은행 조사부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밥값을 지불할 때는 언제나 새 돈을 쓰던 것이 매우 부러웠었는데…. 5-6년 동안 함께 지낸 그와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참으로 많은 세월 동안 우리는 인생을 얘기하고 농촌과 농민운동에 함께 일하기를 약속했다. 나는 그날 밤 점호를 마친 후 한 순간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에 복받쳐 막사 밖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 소대 기간사병이 엉엉 울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참 친한 친구였나보지!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울어서야 되겠느냐? 이제 그만 들어가서 취침하라”는 등 위로의 말을 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기간사병은 오늘 내일 사이에 있을 위생 감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데 사물함 정리 같은 것도 잘 해두라고 덧붙여 일러 주는 것이었다. 밤잠을 설치고 위생 감사를 대비하고 있던 이튿날 오후. 소대원 전원 팬티차림으로 모이라는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사연인즉 위생 감사에 대비하여 목욕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소대원 전원이 처음 가보는 목욕탕에 이르러 팬티를 지정된 락커에 넣고 3인 1조씩 탕에 들어가는데 하나, 둘, 셋 세 번 물탱크에 앉았다 섰다하고 나오는 것이 목욕의 전부이었다. 내가 목욕탕에서 맨 나중에 나왔더니 이게 웬일인가? 동료 병사들은 벌써 다 밖으로 나가고 없는데 내 팬티가 사라진 것이었다. 알몸으로 뛰어나갈 수도 없고 난처해 하고 있는데 그 기간사병이 좀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소대원이 곧 들어올 터이니 그때 아무거나 입고 가라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3분도 안되어 또 다른 소대원이 뛰어 들어오는 것이다. 이들이 탕에 들어간 다음, 나는 무려 세 개의 팬티를 껴입고 목욕탕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이것도 모르고 늦게 나온 세 사람의 병사가 팬티를 찾고 있을 장면을 연상하면서. 군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참으로 익살맞은 경험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육군훈련소에서 이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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