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꿈인지도 몰라
눈 덮인 산에 올라 나뭇짐을 꾸리던
새벽녘 밥 냄새에 횟배를 앓던
싸리꽃 어지럽던 고향
어쩌면 꿈인지도 몰라
너와 기약했던 세월,
반짝이는 저녁강에 이제 없는지도 몰라.
눈보라 몰아치는 바람소리 무섭던 날
한 번 돌아보지 못하고 떠나온 고향
어쩌면 꿈인지도 몰라
베란다에 앉아 빌딩숲 마주 보며
언뜻언뜻 보이는 야산들
그 한 줄기 초록빛에 휘둘려
아득해지는 마음.
어쩌면
초저녁 울 너머로 걸려 있던
별도, 달도
다 지워졌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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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꿈꾸는 듯한, 내가 정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한 그런 때가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런 때 엄습하는 외로움 때문에 우리는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일수록 그런 날은 자주 오게 마련이다. 도시의 각박한 삶이, 각박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을 더욱 그리움에 젖게 하는 것이리라.
박두규 시인은 지리산 시인이다. 지리산이 언제나 그의 마음 자락에 부드럽고 그윽한 산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도 언제나 지리산 자락을 하나 품고 산다. 그래서인지 이 시는 그냥 고향을 떠나 사는 자의 회한으로 남지 않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가락으로 와 닿는다. 고향을 떠났으되 고향을 결코 떠나지 않은 사람은 이 시를 읽어야 한다.
( 배창환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