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인간에게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 행복에 이르는 삶의 소중한 기쁨은 정녕 신앙에서 주어질까? 신앙이 참으로 삶의 올바른 진리와 행복을 가져다 줄까?아내는 수십 년을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와 봉사로 신앙 생활에 열중이다. 이러한 아내와 신앙의 대화를 하여 보면 어이없게도 자식 걱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남편 걱정, 부모 걱정, 이웃 걱정, 나라 걱정까지 기도할 제목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기복 신앙의 어처구니없음을 탓하면서도 지난날의 살아온 삶이 하도 고달픈 날들이었기에 아내의 눈물 어린 기도가 오늘을 지탱하게 하였나 보다 하고 항상 감사하며 산다.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행복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우리 인간은 고도의 과학 문명 속에 살면서도 격변하는 시대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남으로써, 인간의 연약한 마음의 틈새에 종교도 들어오게 되고 사이비 종교도 들어와, 그것들이 한때는 번창하기도 하고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돈을 얻고자, 권력을 얻고자, 높은 지위를 얻고자, 명예를 얻고자, 건강을 지키려고, 기를 쓰며 안달이다. 모두 행복을 얻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정녕 행복이란 돈이나 명예 지위 등의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경 8복에서도 가르쳐 주지만 분수에 맞게 마음을 비우고 생활하는 데에서 온다. 그렇건만 행복을 희구하는 속인의 마음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얻고자 하는 욕심의 기도가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바라고 원하는 소망이 각각 다르기에 자녀가 없는 이는 자녀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사업가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도하고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젊은이는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해 달라고, 취직을 앞둔 젊은이는 좋은 직장을,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나 학교에 입학하기를 기도한다.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늙은이나 젊은이나 자기의 소원을 신에게 간구한다. 이러한 인간의 각양각색의 간사한 그 많은 기원들을 신은 어떠한 기준으로 어떠한 사람에게 점지하여 주실까? 어리석은 중생들아, 기도는 무엇인가? 바라는 것의 간절함이요 믿음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며칠 금식하고 절 몇 백 번 한다고 너희들 욕심 채워 주랴, 공든 탑을 어디에 쌓았느냐! 신은 이렇게 책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 어머님들은 입시 철만 되면 큰 나무 큰 바위 밑에서 애달픈 치성을 드린다. 현대 문명의 이방 지대인 듯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교회나 사찰에서도 입시 철만 되면 날짜를 정하여 기도회나 법회를 연다. 선거 철도 마찬가지이다. 속인은 이러한 위급한 때를 당하면 이렇게 연약하고 바보스럽기도 하고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신앙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통 인간은 특정한 결과를 얻으려고 욕심의 기도, 집착의 기도를 대부분 드린다. 간구하고 기도한 사안이 잘 이루어졌을 때는 기쁨과 행복, 감사함을 가질 것이다. 반대로 사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시간의 손실, 돈의 손실과 함께 정성이 모자란 데 대한 스트레스마저 겹쳐지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현대인의 그 영악한 계산법으로 간구한 기도가 얼마나 이루어질까? 천지신명에게는 그렇게 지극해야 복을 받을 기회가 또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일까? 어리석은 중생아! 사실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머리가 명석한 사람은 공부 잘하며 좋은 학교에 가기 쉽고, 부모의 유산을 많이 받으면 재산의 기득권에 따라 잘살기 쉬운 것이 세상사가 아닌가? 그런즉 기도는 자기의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좋은 결과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기도 아니한 것만 못해진다. 최선의 노력에 관계없이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함은 집착에 더욱 얽매이게 하여 행복을 얻기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아질 것이다. 석가의 참가르침은 기복 신앙을 가르친 것이 아니요 집착의 고(苦)에서 벗어남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결과를 추구함으로써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성경에도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것이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성현들은 가르치는데, 사바의 인간들은 욕망과 집착의 불에 태워져서 스스로 사고팔고(四苦八苦)의 삶을 살아간다. 성현의 가르침이 거짓이 아닌 참진리의 말씀이기에 몇 천 년 동안 수많은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인간의 교훈으로 자리 매김되어 왔다면, 그분들의 가르침 그분들의 삶을 닮아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그런데 진세의 인간들은 사랑과 봉사, 역경과 고난의 길은 원치 않으며 공명과 부귀 안락에 집착한다. 정녕 융단 깔린 안락의자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복을 빌어 주는 성직자에게서 무슨 복을 얻을 수 있을까? 덧없는 인생, 욕심과 집착 때문에 마음에 고(苦)가 생긴다면 간구와 기복의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명예와 권력과 돈이 좋다고 부추겨도 참행복을 느낄 수 없다. 조금 가진 것에도 항상 감사하고 자족하며 기쁨을 느낄 때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거름은 쌓아 두면 썩은 냄새를 내지만, 작물에 골고루 뿌리면 몇 배의 수확을 얻게 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다. 남을 믿고 자신을 수양하며 신을 믿을 때 데레사 수녀처럼, 꽃동네의 최기동 할아버지처럼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욕심과 집착의 골리앗을 버리면 항상 기쁘고 감사의 생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이 부족한 속인, 걸망 하나 메고 탈속하여 산마루 넘나드는 스님이나 될거나…. 신이 우리의 보금자리 자연과 우주를 준 것처럼 나도 빛도 없이 이름없이 오른손 하는 것 왼손도 모르게 나누며 베풀며 살리라! 행복은 집착과 욕심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이니까 말이다.
최종편집:2025-05-14 오후 0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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