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만남과 별리(別離)인가? 새아기가 신혼 여행을 갔다오면서 사돈 내외분을 모시고 왔다. 결혼은 연애를 했거나 중매를 하여 만났거나 어쨌든지 가장 뜻 있고 멋있는 만남이다. 뿐만 아니라 평생을 같이할 배필을 만난다는 것은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축복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한 여자의 입장에서 시집을 간다는 것은 친정 부모님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별의 아쉬움 때문에 고뇌하는 시간이기도 한가 보다. 세상 사는 것이 시원하고 섭섭한 일이 한둘이 아니련만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그 중의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사돈과 첫 대면으로 간략하게 예(禮)를 갖춘 후 새아기의 큰절을 받고, 소찬을 들면서 양가 집안의 내력이며 지명(知命)을 살아오면서 삶의 굽이굽이 애환(哀歡)에 찼던 일들을 담소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꽤 늦은 시간이 되었다. 시간을 확인할 여유도 없이 새아기와 사돈의 이별의 시간이 되었다. 사돈과 같이 권면의 마지막 덕담을 하여 본다. “너희들은 몇 달 간 사귀고 만나면서 마음을 모으고 성정을 가꾸면서 외형은 어느 정도 갖추었는지 모르나, 결혼이란 외형으로만 합쳐지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부터 싹터 오는 다정한 사랑으로 허허로운 풀밭을 일구는 것이다. 양가의 가정 풍습과 생활 습관이 하루 이틀에 맞추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고 부모와 형제간의 사소한 의견과 조그만 언행의 실수가 부부간의 싸움의 불씨가 될 수도 있고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진실을 감싸 안고 참고 견디는 소망의 생활을 하도록 하여라. 나는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고 딸을 대하듯 할 것이며, 사돈 또한 백년지객 사위가 아니라 아들을 대하듯 마음을 열고 살 것이다.” 이렇게 어설픈 덕담을 하는 사이 새아기는 부모 곁을 떠나는 이별의 슬픔을 참지 못하여 명치끝에 숨을 죽이고 눈물을 삼키고 있다. 사돈 또한 자식을 떠나 보내야 하는 순리 앞에 더 붙잡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 어떤 한계 앞에서 딸을 가진 부모의 서성임을 본다. 나는 강한 전류에 감전이나 된 듯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새아기가 감당해야 할 이별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웃고 즐기며 떠들던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딸을 키운 후의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때문이리라. 사람의 의식 세계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이제껏 의식의 뒤꼍에서 잠자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얼른거리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면사포를 쓰고 다소곳 맞절하던 아내는 벌써 세 아이의 어미가 되어 맏이를 결혼시키게 되었구나! 큰집 맏며느리로서 오형제를 출가시켰고 언제나 일 속에 묻혀서 살아온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진한 기억의 골짜기에서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면면 촌촌을 괴나리봇짐으로 전근 다니면서 사글세방에 연탄불 피우며 살던 가난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산부인과에 한 번 가 보지 못하고 무식이 유식이 되어 세 아이를 집에서 낳았고 그 흔한 분유 한 통 사 먹일 여유가 없어 젖 동냥 모유로만 키운 모정, 변변한 옷 한 벌 제대로 해 주지 못하면서 짜증과 불평만 늘어놓던 나. 진실로 아름답고 맑은 새아기의 눈물을 보면서 오늘같이 기쁜 날 왜 이렇게 서글퍼진단 말이냐! 아내는 준이가 의대를 졸업하던 날은 마치 자기가 대학을 졸업하는 것같이 애들이 입혀 주는 학사모와 학사복을 입고 그렇게 기뻐했다. 진주혼식인가 뭔가까지 치른다는데, 아내에게 아직 실가락지 하나 해 주지 못하고 결혼 기념일을 지냈으니 참으로 멋도 없이 살았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 소중하고 귀한 것 찾지 못하고 다 지나쳐 버린 아쉽고 애잔한 시간들이 물결 되어 가슴에 저미어 온다. 그러나 애들의 삶은 멋지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리고 싶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다. 사돈은 딸과의 이별의 아픔을 참지 못함인지 먼 하늘 창 밖의 별빛을 바라보았다. 나는 작별의 아쉬움을 되뇌며 사돈의 손을 붙잡고 문밖까지 배웅을 했다. 그런데 정작 새아기는 떠나는 부모의 배웅도 하지 않는다. 무슨 풍습이 이렇단 말인가! 현관문을 들어서니 새아기의 방에서는, 어버이의 떠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잔잔한 흐느낌만 들린다. 이 이별의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면 새날이 밝을 것이고 새 삶 새 장이 열릴 것이다. 행복의 파랑새, 아름다운 심상, 청초하게 흘리는 맑고 고운 눈물, 이 시간의 티없는 이 파아란 정을 나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최종편집:2025-05-14 오후 0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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