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가운 허물어진 토담
굽은 어깨로 밭을 안고 있는 집
잘 갈아진 찰진 흙의 몸내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직이 호밋소리 들리고
꿈틀대는 밭이랑의 할머니 곁
흙더민가 했더니
가만히 고개 드는 흙빛 강아지
---------------------------
이른봄일 것이다, 이 그림은.
이 나라 농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도 읽으면 왜 가슴이 뭉클해질까. 허물어진 토담 안으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아마도 초가일 것이 분명한, 서까래가 굽어서 비스듬히 기울어진 집 마당 앞에, 꿈틀대는 밭이랑이 출렁출렁 저 아래로 시내처럼 흘러간다. 누구의 힘으로 갈았는지 흙은 적갈색으로 윤기가 나고, 그 포근한 정경 안에 유일하게 조금씩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 어쩌면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할머니일 수도 있는, 일년 내내 자식 기다리는 호미질에 소리 없이 늙어, 흙을 닮아 가는 할머니와 그의 유일한 벗인 강아지 한 마리....
이 시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상상해낼 수 있는 정겹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산골의 모습을, 짧은 시 행 안에 짜임새 있게 배치해 둔 데 있다.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당 안에 성큼 들어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사실적이다.
오래지 않아 이 풍경마저 낡아서 그림 속에 움직임이 사라지게 될 그 날, 우리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배창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