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는다
허리를 숙일 때의 천천한 동작을 즐긴다
땅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작은 것들이 커 보인다
겨울을 나려는 듯, 함께 먼 길을 가는
땅에 사는 작은 생명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다 보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자연히 낙엽 줍는 손길도 늦어진다
성급히 쓸다 보면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허리 숙여 천천히 주우면 낙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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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면 한여름 내 극성이던 벌레들도 어디로 갔는지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는 가을이다. 벌써 가야산 가는 길에는 단풍이 붉고 느티나무도 옷 색깔을 시나브로 바꾸고 있다.
이 땅에는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살아온 민족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정신이 통째로 물질에 휘둘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바빠졌다. 때로는 바쁠 필요도 있겠지만,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바쁜 것은 분명 삶의 건강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징후이다.
시인은 떨어진 낙엽을 줍는다. 그것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다 보면 낙엽이 쓰레기가 아닌 하나의 귀한 생명체로 보인다. 사물을 사물 자체로 보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 모든 생명체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넉넉한 여유를 확보해 두었다는 뜻도 된다. 낙엽은 그 옛날 신라의 월명사가 생과 사를 비유하여 노래한 이후 무수히 이어온 가을노래의 중심소재가 되었지만, 이 시는 낙엽을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면서 경의를 표함으로써 우리의 현실 삶을 재발견하는, 전혀 새롭고 격조 높은 시임에 틀림없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