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들녘은 황금빛 벼이삭들이 저마다의 무게로 고개를 숙이고 가로수는 한 잎 두 잎 갈색으로 물들여진다.
코스모스 꽃잎이 하늘거리고 뭉게구름 걷힌 파란 하늘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허허로운 허전함을 갖게 한다.
낡은 옷 걸치고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자신의 모습에서 나는 어디라고 할 목적도 없이 일상의 생활에서 훌쩍 떠나고 싶다.
꽃의 향기에 나비가 유혹되듯 가을 산 억새풀의 우수 어린 낭만과 처연하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르는 들꽃의 향기에 유혹되기 때문이리라.
나는 어린 시절 가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우선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먹거리의 풍성함이 있을 뿐 아니라 가을이 되면 산머루 다래를 따고 토종밤을 주우며 마을 뒷산을 헤매는 재미가 있었다.
상큼한 가을 향기 진동하는 산행에서 도토리 줍는 다람쥐도 만나고 장끼의 푸드덕거림에 놀라기도 하고, 숲 속의 침입자에 놀라 달아나면서도 침입자와 눈맞추는 노루의 여유로운 모습도 보았다.
가을은 이렇게 무더위에 잉태된 여러 가지 열매를 만들어 가고 산야의 단풍은 여름을 밀어내고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흘러간 삶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허무하고 무상하게 말이다.
그러니 섬돌 밑 귀뚜라미 호곡 소리에 감정이 유발되고 덧없는 세월에 차마 버리고 싶지 않는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픈 마음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인생살이,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절박함에 고통과 근심이 쌓여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끝나는 날 생애 또한 끝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나는 하루의 삶에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살 만한 가치가 넘치도록 만들고 싶다.
어떤 철학이나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평범한 생활인의 진솔한 이치면 족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부모를 섬기며 이웃과 벗하며 평범하게 사는 삶이다.
이 가을, 자연의 질서는 싱싱하던 잎들이 형형색색의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봄날에는 그렇게 생기롭던 잎이었고 여름날의 진초록 잎은 비바람 치는 장마도 모진 가뭄도 견디어내며 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맺게 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이렇게 땅속에 묻어 짧은 일생을 마치고 있다.
어떠한 보상도 의미도 없이 일생을 마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애절한 그리움이 있고 허무가 있고 풀벌레의 음률이 있어야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초가 지붕 위에 둥근 박의 나상이 있어야 제격이다.
한지 창 사이로 다듬이질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보이고 독경 소리를 듣는 것이 가을의 우리 정서이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가 등장하면서 나는 그 소리 그 정서를 잊어버렸고, 자동차의 소음 같은 기계음에 취하고 편리함에 취하여 살아온 것이다.
세속에 물들여진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머금어 본다. 불현듯 어릴 적 고향의 그리움이 다가온다.
먼 산을 휘감는 구름도 보이고 까치밥 감을 쪼는 까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을 산 낙엽을 보면서 깨달은 이치는 아니지만 일상의 헛된 욕망과 원한 그 무엇도 이 낙엽들과 함께 땅속에 묻어 버리고 싶다.
나직한 소리로 시 한 수 읊조리는 오후이다.
가을이 아니면 이 계절의 정취를 어찌 느낄 수 있을까!
가을은 역시 삶의 순수한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정서의 계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