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나 기계는 사용되면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직접 사용하는 사람은 물론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도 간접적인 광고에 익숙해졌거나 주워들은 이야기로 물건의 품질이며, 성능이며 기능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곤 한다. ‘그 메이커 제품은 믿을 만해.’ ‘아! 그 제품은 겉치레뿐이야’ 등등. 이러한 말들은 어떤 상품을 평가할 때 흔히 쓰는 언어이다. 나는 이태 전 아내의 만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도 친구의 소개로 엉겁결에 중고차 하나를 계약하였다. 물론 우리도 자동차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애들의 성화도 한몫하였다. 아내의 반대는 가정 형편도 문제가 되었으나 운전 미숙도 여간 걱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운전 면허를 받은 지 몇 해 됐어도 운전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출근시 복잡한 버스에 넌더리가 났고, 이웃이 모두 차를 가졌고 나만 없으니 약간 체면 손상도 되는 것 같아 무리를 하면서 이 중고차를 샀다. 중고차이지만 어릴 때 고까신을 샀을 때 마냥 기쁘고 설레어 그날 밤 잠을 설치며, 연습 주행로도 그려 보았지만, 한편 출근길의 도로와 자동차의 물결 속을 어떻게 끌고 다닐 것인가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하여 오고 자동차를 산 것이 후회도 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한적한 새벽, 차를 가졌다는 기쁨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무리 차가 붐비는 시간이 아니래도 연수도 하지 않고 초보 운전의 스티커도 붙이지 않은 채 넓은 도로를 질주하였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두어 시간 시내를 주행하고 골목길의 급커브를 돌려는 참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눈앞이 아찔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니 차를 변상하라고 야단이다. 나는 급커브 길이어서 서행을 하였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쌍방 과실인데도 현장 검증도 하지 않은 채 크게 변명 한 번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변상하여 주었으니, 초보 운전자의 교육비치고 대단히 비싸게 치렀다. 그 일이 있은 후 2년 동안 40여 km의 출근길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별고장 없이 타고 다녔으니 쓸 만한 차였나 보다. 막내의 등교도 가끔 시켜 주고, 바쁜 이웃도 실어 날랐으며, 공휴일이나 방학 때는 가족들과 함께 도회지의 찌든 공해를 탈출하여, 녹색 들판을 가로지르며 파란 하늘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석유 냄새가 역겨운 포장 도로의 거대한 주차장에 갇혀서도, 빌딩 숲 속의 잿빛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이 차에 대한 애정은 차츰 깊어 갔다. 시간은 황금이라고 말한다. 요즘 경영학에서는 생명이라고 하던가? 옛날 어릴 적의 하루는 그렇게 멀기도 해서 언제 점심때가 오려나, 저녁때가 오려나 하고 시간을 기다렸는데 오늘날의 시간은 분초를 다투는 일이 많고 불티가 날아가듯 시간은 날아간다. 그래서인지 이 쇠말을 갖고부터 그 편리함이 여간 다행이 아니라고 생각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미숙한 운전이라고 내가 운전할 땐 차에 타지 않으려던 아내도 요즘은 차 스피커에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에 흥얼거리며 산수화를 감상하듯 차창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한가한 오후에는 가족들 모두가 이 고물차를 세차도 하고 왁스칠도 하며 생명 없는 쇳덩이지만 고장 없이 잘 달려 줄 것을 기원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집 앞에 세워 둔 이 쇠말이 없어졌다. 걱정스럽다. 혹시 누군가가 훔쳐 가서 나쁜 일에라도 쓰면 어쩌나! 새 차도 아닌 고물차를 누가 가져 갔을까? 아니면……이러쿵저러쿵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의 벨이 울린다. “여기는 주왕산입니다. 어제 저녁 아버님 주무시어 무작정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염려 마십시오.”큰녀석이 몇 달 전에 운전면허증은 취득하였으나 운전 기술이 익숙치 못하고 서툴다. 동기생들이 제주도로 졸업 여행을 갔으나 녀석은 지난해 친구들과 그 곳을 갔다 왔으니 거기는 가지 않고 이때를 이용하여 주왕산으로 간 모양이다. “그래, 조심하여 운전하고, 구경 잘하고 오너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어질러진 집 밖 청소를 하고 막 낮잠을 자려는데 전화벨이 급하게 울린다. “아버지, 사고가 났어요.” “뭐…사고가 났다고! 다치지는 않았니? 아버지가 그리로 갈까?”“아니예요,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닙니다.” 한다. 옆에서 전화를 엿듣던 아내는 새파랗게 질린다. “아니, 그래 어쩌다?” 하고 다그쳐 물으면서도 전화를 걸 정도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른 사람도 다친 데 없느냐?” “네.”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스스로 도로변으로 미끄러졌다고 한다. 짐작컨대 밤새 잠도 자지 않고 150km를 달렸으니 피로가 사고의 원인인 것 같다. “차는 견인토록 하고 집으로 빨리 오너라.” 하였다. 해질 무렵에야 풀이 죽은 녀석이 돌아왔다. “크게 다친 데는 없으니 여간 다행이 아니고, 차는 고치면 되지. 걱정 말아라.” 하며 야단도 치지 못하고 오히려 위안의 말을 전했다. 아내는 아들의 얼굴을 본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얼굴에 웃음을 띤다. 이것이 부모의 정인가, 자녀에 대한 사랑인가? 며칠이 지난 후 청송 정비공장을 찾으니 고치는 것보다 폐차를 시키는 것이 낫겠단다. 고쳐도 ’87년형 S차이니 이 정도의 중고차는 고치는 값이면 살 수 있단다. 자동차 보험을 들지 않은 것이 후회되면서도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녀석의 졸업여행 비용의 몇 배가 날아갔다. 말 못하는 쇠말이라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년을 온 식구가 편리하게 쓰던 정들은 기계이다. 대강 쓸 만한 것을 떼어 팔아도 몇 십만 원은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견인료와 폐차 비용을 합하여 몇 십만 원을 내라고 한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버리면서 살아야 하는 소비 시대라 하더라도, 엔진이며 에어컨, 라디오, 타이어, 축전지 등 그래도 쓸 만한 것이 많은데 오히려 폐차 비용까지 내란다. 버리자니 정들었던 물건이라 너무나 서운하고, 고쳐 사용하자니 투자에 비하여 경제성이 없다. 원래 셈하는 것은 부족한 사람이니 마땅히 처분할 뾰족한 방법도 모르겠다.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는 쇠말이 더욱 아깝다. 주인을 잘못 만나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건도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면 이렇게 아까운데 인간이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울까? 녀석이 다치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고 미련 없이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날 나는 그 자동차를 폐차장으로 견인하면서 애잔한 마음의 파도를 느꼈다. 지명의 고개를 넘어선 지도 몇 해가 되었으니 하나씩 둘씩 버릴 줄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인생인 것을……!
최종편집:2024-05-14 오전 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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