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울던 날
이삿짐을 꾸렸다.
장롱을 싣고 이불짐을 싣고
찬장을 실었는데
화분 세 개가 마당에 남아 있다.
" 그냥 가자"
" ................. "
안 간다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황사바람 속을
트럭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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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다녀본 사람은 알리라, 사람에게도 뿌리 내릴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뿌리가
얼마나 소중하며 떠 있는 삶이 얼마나 쓸쓸한 것인가를. 그래서 뿌리를 잃은 사람끼리는 뭔
가 통하는 느낌이고, 그 유대감을 바탕으로 7,80년대 이 땅의 지성들은 독특한 한국식 민중
운동과 따뜻한 희망을 만들어냈다.
자기 땅이 한 평도 없는 사람들은 남의 2층집이나 전세 아파트의 베란다에 화분을 갖다
놓고 온갖 꽃을 키우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분꽃 나팔꽃 채송아 봉숭아가 있고, 상추나 고
추 심지어 고구마 호박까지, 뿌리 잃은 농경인 후손들의 슬픔을 타고 자라난다. 그것들이
넘쳐나면 자리가 비좁아지는데, 이사 갈 때는 그 동안 얼마나 빼곡이 살 맞대며 살았던가를
확인하게 된다.
정든 화분을 두고 안 간다고 뻗대는 아이나, 새로 이사가는 곳에 둘 자리 없다고 그냥 두
고 가는 어른 모두가 아름다운 흙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황사바람 끝에 놓인 새 삶터에서
다시 작은 희망의 화분들을 사 모을 것이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