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드시면
아버지는 곧잘 우신다
농약 먹고 죽은 동갑내기 한 분을
산자락에 묻고 돌아오신 그날도
초상술에 많이 취해
집에 와 우셨다
입 옹다물고
안방에 누워
나를 옆에 오라 하신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움켜쥐고
울기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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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식놈 행동거지 맘에 들지 않으시면
어김없이 귀싸대기 올려치던
손
나이 삼십이 넘은 오늘에서야
그 손의 따뜻함을 안다
흙노동에 닳아진
세월의 무게에 고단해진
아버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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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식에게 뿌리이면서 줄기이다. 아이들은 거기서 가지를 벋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삶은 곧 자식에게 이어지고 자식은 아버지에게서 세상을 만나고 살아가는 법을 전수받게 된다. 아버지와 때로 충돌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아 버지는 참교사도 되고 반면교사도 된다.
시인의 아버지는 농민이다.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외롭게 농촌을 지키고 계신 할아 버지들이 시인의 아버지 세대들이다. 그들은 어려선 일제강점기를, 젊어선 한국전쟁을 겪었 다. 그리고 장년기엔 근대화를 맞으면서, 수십 년 지기와 자식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내야 했 던 세대들이다. 그래서 슬픔과 기다림에 익숙하고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손은 언제나 흙노동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따뜻하다.
시인은 삼십이 넘어서야 그걸 깨달았다! 벗님의 죽음 앞에서 흐느끼는 아버지를 보면서....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