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향리에 있는 우두봉산에 산행을 한다. 이곳에는 고려 18대 의종이 3년 간 살던 폐왕성지가 있다. 의종은 인종의 맏아들로서 시호는 장효요, 1148년 금나라로부터 왕위 책봉을 받아 왕위에 오르고 시문을 좋아하고 팔관회를 장려하였다고 한다. 무신 정중부 일파는 문신들이 시문을 즐기며 호사스런 연회를 자주 베풀고 무신을 경멸한다 하여 경인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이곳에 위리안치시켰다고 역사는 전한다.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 우두봉산 중허리에 있는 이 산성의 둘레는 550m이고 높이가 5m 정도이다. 성의 중앙에는 천지못과 북단에는 산신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다.
산성으로 오르는 산골짝에는 층층이 탑을 쌓은 듯한 실뱀이 논들이 많으나 묵혀진 채 잡초만 무성하다. 이 논들은 대대로 이어 온 봉제답이건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관리하던 움막만 을씨년스럽다. 옥토도 묵히는 농촌의 실정이니 봉제답인들 묵힌다고 누가 탓할 수 있으랴마는, 50∼60년대에는 이 골짝 논들은 산풀을 베어 넣기 쉽고 한발에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니 시제사의 제수답으로 상답이었고 참으로 귀한 논들이었다.
실개천을 따라 오르다가 산길로 들어서면 길섶에 숨어 놀던 장끼와 까투리는 무단 침입한 길손에 놀라서 “푸드득 푸드득 꿜끄렁 뀔끄덩…” 무척이나 장엄하고 경쾌한 울음소리를 내며 먼 산으로 날아간다. 길손도 장끼의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솔숲의 솔바람은 거문고의 울림으로 들리기도 하고 흐느끼는 듯한 바이올린의 운율이 되기도 한다.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에는 박속보다 흰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기도 한다. 벽공에 획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소년의 청운에 소녀의 입김을 불어넣는 듯하여 세속의 때가 씻기는 기분이다.
성 아래에는 돌덜겅이 있다. 돌덜겅은 영등할매가 우두봉의 바위를 치마폭에 싸서 버린 것이 돌사태를 내어 만들어졌다는 설화가 전한다. 그 밑으로는 해맑은 물이 방울 소리를 내며 흐른다. 바위에 걸터앉아 이 여울물 소리를 듣노라면 고려 문신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다.
바위가 없는 산, 물이 없는 계곡은 얼마나 적적할 것인가? 자연은 정을 주면 정을 되돌려 준다.
등산로가 없어서 잡목을 붙잡으며 숨차게 오르기 반나절, 폐왕성에 다다르면, 누구의 무덤인지조차 분간키 어려운 공동묘지에는 잡초와 땅찔레나무가 뒤엉키고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소를 먹이며 뛰놀던 감미로운 추억을 떠올리며 조부님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천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권토중래를 꿈꾸었던 의종을 그려 본다. 이 좁은 둔덕골에서 그 서슬이 시퍼렇게 날뛰던 정중부의 무력 앞에 대항하여 의종의 복위를 꾀하던 김보당을 중심으로 한 고려 문신들의 가냘픈 모습들, 고려 선비들의 충절이 살아 숨쉬는 고려 무덤과 말을 기르던 마장리, 군량미를 생산하던 농막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성 위에 올라서면 북으로는 우두봉산, 동으로는 수려한 산방산이 가부좌하여 있고 남서쪽으로는 푸른 다도해의 이름 모르는 섬들 사이로 굴 양식장의 플라스틱 부표가 꽃처럼 떠 있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 신의 요술이 아니고는 정녕 만들 수 없는 비경을 이루고 있다.
귀양지 세인트 헤레나에서 슬픔 속에 몸부림치던 나폴레옹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이 산성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던 폐왕이여! 의종이여! 한 줄의 시를 술병에 넣어 마신 것이 은하계의 살별이 되었는가? 누가 이긴 자이며 누가 진 자이냐? 누가 역사의 주인공이며 누가 역사의 기록자이냐?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군사 쿠데타의 총칼 앞에 문민정부에의 민의도 버리고 어느 수도원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던 운석의 모습이 아이러니컬하게 떠오른다. 이솝의 우화에도 인간은 진짜와 가짜의 자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이거나 참과 거짓이 공존하면서 가짜는 외부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진짜는 숨겨져서 가라앉으면서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도 가짜의 역사, 외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성곽에 몸을 기대고 부질없이 우리 사회의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의 늪, 가짜의 늪, 불감의 늪, 이기의 늪에 생각이 머문다. 아무리 산업화 과정이 소용돌이쳤다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가 되어, 무엇이 원인이 되어 오늘의 세태가 이렇게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권위주의에 젖은 군사 문화, 물신주의에 물든 지도자들의 거짓 약속, 거짓 행동이 그런 늪을 만들지 않았을까? 물론 가난에 주눅들어 비굴하여지고 성취주의에 빠져 역지사지로 가난을 벗고자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며 달려온 우리 모두의 잘못일 수도 있다.
이 산성의 축성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장정들, 그리고 부녀자까지도 동원되었을 것이며 힘겹고 무리한 작업도 요구되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환생의 소망을 돌이나 무덤에 새겼다고 했던가? 허물어진 석축, 이끼 낀 바윗돌은 천 년의 역사가 지났음에도 핏빛 울음소리가 되어 경인정변을 이야기하고 부서진 기와조각은 의종의 한이 서린 듯하다.
아무리 가짜가 판을 치고 불신과 물신의 늪이 우리의 의식을 좀도둑질하는 얄미운 세상이라도, 이 땅이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면,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듯이 자연의 순리는 사랑 보시의 삶을 실천하기를 가르친다.
폐왕성을 찾을 때마다 희생된 선인들에게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여 묵념하는 나의 마음을 저 산새들은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 우두봉산 초장(草場)에는 한가로운 한우 떼가 풀을 뜯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