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30대에게 인기있는 드라마 중 하나가 tvN에서 방영하는 응답하라 1994이다. 작년 여름 방영된 응답하라 1997의 후속 드라마인데, 과감하게 지방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1997은 부산에서 벌어지는 얘기였고, 1994는 부산사람들이 서울로 이주해서 겪는 애환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가정부나 조폭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던 지방 사람들이, 이제는 주인공도 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응답하라 1994의 인기는 젊은 층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다. 드라마 주인공들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드라마에 나타난 1990년대 생활상이 20-30 세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주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먹던 과자, 인기 있던 가수와 스포츠 스타, 그리고 공중전화와 삐삐 같은 소품들이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준다. 50-60대에게는 지금이나 90년대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20-30대에게는 그 때가 아주 오래 된 옛날인 것이다. 20-30대가 복고풍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90년대와 같은 동질성이나 연대감을 지금은 느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20-30대들에게는 취업이 힘들고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 말고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 별로 없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할 기회가 많지 않다. 과거처럼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입시준비에 몰두하느라 친구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거의 없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취업준비에 바빠 동아리 활동이나 선후배간 교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수학여행이나 사은회 같은 집단적 행사도 사라지고 있다. 여가 시간은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홀로 앉아 게임을 하거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혼자 음악을 즐긴다. 대도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고 있지만, 주변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되살릴 기회를 주고 있다. 집단 기억은 공동체 구성원끼리 함께 간직한 기억으로, 작게는 가족 간에, 크게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한다. 가족여행을 통해 만드는 집단 기억도 있고, 2002년 월드컵 4강과 같은 국가적인 집단 기억도 있고, 9-11 테러사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집단 기억도 있다. 집단 기억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켜준다. 9-11 테러의 기억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라크 침공과 아프간 파병을 감행할 정도로 단호하게 만들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한국전쟁과 새마을 운동을 기억하는 세대들의 정치적 결속력이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20-30대의 결속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단 기억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단위의 집단 기억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고, 친구 대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지하면서 동시대인들과 공유할 문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불과 20대에 벌써 과거를 그리워하는 조로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사회에도 집단 기억이 거의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프로 스포츠가 지역사회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국가대표팀 못지 않게 지역 프로구단의 인기가 높다. 지역 스포츠팀의 성적이 지역사회에 대한 자부심과 지역주민들 간의 연대감에 크게 작용한다. 선진국에서는 지역언론 또한 지역사회의 집단 기억 제공수단이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주요 뉴스를 공유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직접 교류하지 않더라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고취시켜 준다. 그러나 대한민국 지역사회는 집단 기억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서로 함께 회상하며 맞장구를 칠 공유하는 추억이 없다. 프로 스포츠팀이 지역연고제로 운영되지만, 지역사회를 대표하기 보다는 재벌의 홍보수단으로 머물고 있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의 우승팀은 보스톤 레드삭스이지만, 한국 프로야구 우승팀은 대구가 아닌 삼성 라이온즈이다. 지역언론의 보급율이 낮아, 언론을 매개로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지역문화도 정착되지 못했다. 고향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 아는 사람 찾기 하다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응답하라 1994는 인기 드라마가 되었지만, 응답하라 2013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3: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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