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홉명이다. 우리 내외, 아들, 며느리, 큰 손자, 작은 손자, 딸, 사위, 외손녀 이렇게 아홉명이 나의 집 인근에(옆 단지 아파트) 살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손자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큰 손자 현민이는 태어난 지 6개월째부터 며느리가 아침 출근하며 우리집에 데려다 놓고 퇴근 때 자기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낮에는 할머니가 육아를 전담한 셈이다. 나는 어쩌다 시간 나면 유모차를 끌고 큰 손자 바람 쐬어준 것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큰 손자가 자라면서 내가 같이 놀아준 기억도 많지만 어릴 때 손자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하는 모든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큰 손자가 태어나고 3년 후 둘째 손자 현진이가 태어났다. 며느리는 1년 육아 휴가를 얻어 아이들을 키운 후 이제 손자 둘이 우리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작은 손자가 태어나고 2년 후에는 딸이 외손녀 혜윤이를 낳았다. 외손녀가 자라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딸과 외손녀도 저녁 시간이면 우리 집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여 저녁 자리는 늘 잔칫집처럼 시끌벅적하였다. 그래서 우리 아래층에 사는 이로부터 시끄럽다는 민원을 간접적으로 들은 적도 있다.
이때 한 번은 큰 손자 현민이가 고모는 왜 여기서 저녁을 먹느냐고 묻는다. 자기와 동생 현진이는 당연히 할머니 밥을 먹어도 되지만 고모와 자기 고종 동생은 아니다 싶은가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외손녀는 매일 저녁 외할머니의 밥을 먹고 외사촌 오빠들과 어울려서 잘 놀고, 특히 작은 손자 현진이와는 아주 친하게 놀던 아이가 자기 할머니는 하남에 계시고 여기 할머니는 오빠들의 할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두 아이 모두 누가 그런 교육을 시킨 적이 없는데도 피가 그렇게 흐르고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손자 둘, 외손녀 모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같은 유치원에 초등학교 선·후배가 되었다. 외손녀(초6)는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는 자기 엄마와 같이 자기 집에서 식생활이 이루어지니 우리집에 오는 기회가 적어졌다. 하지만 손자 둘은 지금도 저녁 식사는 할머니가 해 준 밥을 먹으러 온다. 그래서인지 손자들, 특히 현민이는 할머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큰손자 현민(고2)이는 고등학생이 되고는 자기 시간이 바쁜지 저녁밥 먹으러 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할머니는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작은 손자 현진(중2)이는 비교적 정해진 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오니 할머니는 작은 손자가 더 예뻐 보이는 눈치다.
"손자들이 같은 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러 오면 할머니가 조금은 수월하기도 할 텐데." 하며 나는 은근히 아내편이 된다. 오후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할머니는 큰 손자에게 카톡을 보낸다. "현민아, 몇 시에 밥 먹으러 오니?" 보통 때는 몇 시경 오겠다고 답장이 온다. 그러다가 가끔은 큰 손자로부터 "집에서 먹음."이란 카톡이 온다. 그러면 할머니는 "응. 알았다." 또는 "오냐, 도령아." 등으로 답장을 보내며 시원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는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느냐고 내 앞에서 투덜대기도 한다. 나는 조금 더 크면 아이들이 오라고 해도 안 오니 아이들이 올 때까지 수고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손자들이 성장하면 할아버지 기억은 못 해도 할머니 기억은 오래도록 할 것이니 조금 더 수고하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그래도 손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보다 더하다. 한번은 저녁 식사가 끝나는 작은 손자 현진에게 딸기 여섯 알을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조금 후에 우리 내외가 함께 먹을 딸기는 네 알을 내놓는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이제 늙은 남편은 안중에도 없고 손자들만 챙기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 가도 그 행동이 밉지는 않았다.
아내의 수고 덕분에 나는 보고 싶은 손자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기는 한데 "이런 생활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어질 수 있으려나." 허전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이 들어 애쓰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나도 이제 당신 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해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