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마른 땅에서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새 나무도 사람을 닮아버린 것일까,
거센 바람을 피해 언덕에 달라붙는 슬기도 배우고
돌을 비집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재주도 익혔다.
그러느라 어깨와 등은 흉칙하게 일그러지고
팔과 다리는 망측스럽게 뒤틀렸으리라,
눈비에 몸을 맡기는 순순함에도 길이 들고
몸속에 벌레를 기르는 너그러움도 지니면서,
2
겨우내 가지를 찢고 몸통을 꺾는
혹한과 폭설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맹세했었지,
다시는 몸에 꽃도 열매도 맺지 않으리라고,
한데도 왜 우리들의 몸은 다시 더워오는가,
어둠을 찢으며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면서,
머지않아 온 산이 꽃으로 향기로워지겠지,
또 불어닥칠 바람에도 눈비에도 아랑곳없이,
메마른 땅에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나무를 닮아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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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가 서로 같을 수 없고, 깊이도 다르겠지만, 동해로 동해로 이어지는 해맞이의 끝없는 행렬은, 우리 삶의 지향점이 어두웠던 지난 시간보다는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조차 그 삶이 뒤틀리고 일그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순순히 자신을 자연의 흐름에 맡김으로써 너그러워지고 또 완성을 향해 나아감을 보면서 시인 역시 나무를 닮고자 한다.
겨울은 그 안에 봄을 예비하고 있고 그러기에 견딜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아 온 노시인(老詩人)의 원숙한 인생살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서,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자기성찰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두고두고 음미할만한 좋은 시임
에 틀림없다.
( 배창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