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세모의 매서운 추위와 함께 입시의 홍역을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두 번 치른다. 우리의 교육 문제 중에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부분이 대학 입시라고 말하는데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회 병리 현상의 주된 원천이 대학입시 제도의 잘못에서 온다고 탓하는 사람도 많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 학교에서 학생과 학생 사이의 인간 관계가 나빠지는 것, 특별활동 시간이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것, 상담 지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윤리 도덕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 등등. 이런 판단과 논거는 상당한 현실적 근거와 논리적 타당성이 있다. 가정교육의 부재는 사회 병리 현상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중요성을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두 아이가 그래도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막내가 고등학교 고학년이다. 그런데 가정교육이 부실했던 그 증좌들이 근래에는 한두 가지가 아니게 자주 터져 나옴을 본다. 참으로 늦은 깨달음이지만 부모에 대한 예절이며, 근면 검소의 생활 습관이며, 언어 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식에 기대했던 나의 희망과는 달리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가르칠 수 없게 그들은 이미 다 커버렸고, 막내는 아직도 대학 입시와 씨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교육은 이렇게 입시 교육에 매달려 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산업 환경, 사회 변화를 소용돌이로 몰고 있다. 그런데 혹자는 오늘의 한국 교육을 꼬집어 21세기 인재를 양성할 학교가 20세기 선생님들에 의해, 19세기 시설 속에서 18세기 방식의 교육을 행하고 있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 교육은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대비해 너무나 안일한 자세로 강 건너 불 구경만 해 왔다는 비난의 소리를 면할 길이 없다. 우리의 초·중등 교육은 아직도 시험 결과에만 집착하는 단편적 사고와 암기에만 의존하는 선다형 정답 찾기의 주입식 교실 수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가정교육 또한 어머니에게 맡겨져 아이에게 온 전화도 이해 관계에 따라 ‘없다’고 하는 등 거짓말을 자주 하면서도 너희들은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자신은 TV에 매달리면서 자녀들에게는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가르친다. 사회교육은 어떤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여름 휴가철 고속도에서, 바닷가에서, 이름난 계곡에서 보여 주는 우리 국민의 무질서와 미성숙은 어린 자녀와 학생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까? 그뿐이랴! 외제가 아니면 생활을 못하는 양, 고급 의류, 호화 가구, 그것도 모자라서 고급 외제 승용차에 몸을 싣고 거드름을 피우는 졸부들의 과소비 풍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리고 문화의 척도가 교수의 사고요 교수의 권위가 학문이라고 하는데, 일부이기는 하지만 최고 지성의 장인 대학에서마저, 돈의 노예가 되어 입시 부정의 소동을 일으키고, 교수의 권위가 말이 아니게 뒤흔들리고 있다. 또한 변태적 한국형 과외는 가정경제를 파탄시키고 사회 가치관의 잘못된 3D 현상은 우리 경제를 더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교육을 정체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이제 우리 교육도 철저한 품질 관리로 입시 교육의 저질화를 막고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졸업장은 공산품의 품질 보증서와 같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졸업장 문제에 대하여 문제로 인식하는 교육자를 찾아보기 힘들고 이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의 공동체가 저질러 놓았고 우리 교육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려온다”는 말처럼 세계 정세는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꿈을 부풀게 하고,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환태평양 시대를 예고한다. 백 년 전 우리의 선조는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여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는 민족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환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다시는 밀릴 수 없다. 국제사회는 냉혹한 경쟁과 의견 대립을 하면서도 집단의 이념, 서로의 차이와 특징을 인정하고, 개인, 남녀, 노소, 인종, 계층을 이해하는 동시에 대화와 타협으로 공동체 의식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 우리 교육도 미래 사회의 주역을 기르는 사명 의식으로, 토론하고 사고하고 탐구하고 창조하는 일대 교육 혁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제껏 너무나도 유명무실했던 교육 목표를 되돌아보자. 교육법 제1조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공민으로서 자질을 갖추게 하며,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찌든 입시 교육, 시험을 준비하는 교육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교육, 전인교육으로 바꾸어 가자.
최종편집:2025-05-14 오후 0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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