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대학교 동물생명공학과에 입학한 것은 1952년 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올해로 꼭 60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단기 연호를 사용하던 때라서 우리가 입학하던 서기 1952년이 단기로는 4285년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기생을 50입학동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50여 명이 졸업하였으나 이날 마지막 동기 동창생 모임에는 겨우 십여 명이 모였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에도 두 사람의 동기생이 작고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모두 십여 명의 친구들이 작고했는가 하면 서너 명의 동기생은 건강이 악화되어 두문불출 상태에 있다고 한다. 지난날 상당수의 동기생은 아예 이 동기생 모임에 나오지를 않으니 결국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동기생은 십여 명, 많을 때는 열댓 명밖에 안 된다.
올해로 우리 동기생의 평균 연령은 여든 세 살이다. 노화현상 때문에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넓은 뷔페식당이라도 우리 동기생들이 앉아 있는 곳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모두가 큰 소리로 말을 한다. 그러니 와글와글 시끄러운 곳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친구들이 마주보고 앉아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개는 전부터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하는 이야기들이다. 전에 얘기한 걸 잊어버리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오가는 얘기는 주로 건강문제, 병원에 다녀온 얘기, 입원이나 수술했던 때의 괴로웠던 얘기 등등이다. 늙으면 자주 드나드는 곳이 병원이니까 자연히 이런 대화가 많을 수밖에….
식사가 한참 진행되고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H 교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중대한 발표를 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16년 동안 우리 동기회 회장으로 수고한 H 회장의 발언에 모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H 교수의 말인즉, 그동안 몇 번이나 회장의 교체를 주장했으나 그때마다 연임하라고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 건강도 그전만 못하고 또 집안의 사정도 있어서 이제 더는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으니 회장직을 사임한다는 것이다. 만일 후임 회장을 선출하지 못하면 우리 동기 동창회는 오늘이 그 마지막 모임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나이에 우리가 새 동기회장을 뽑고 모임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면서 결국에는 그날 모임이 우리 동기생들의 마지막 동기회가 되고 말았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C 동기생이 자기가 동기들의 빈소에 몇 번 가 본 다음 느낀 것인데 막상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그 부인이나 자식들을 모르는 상황에서의 문상이 매우 괴롭다고 하면서 앞으로 너희들이 죽어도 나는 문상을 못가니 양해하거라. 그 대신 오늘 너희들의 얼굴이나 한 번 더 보겠다고 해서 좌중을 웃겼다. 또 어떤 친구는 이 추운 겨울이 가고 꽃 피고 새 우는 따스한 봄이 오면 우리가 또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자는 발언도 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이 세상을 떠나게 될 터인즉, 따지고 보면 오늘의 이 마지막 동기 동창회도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준비 중의 하나가 아닐까?(2012.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