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들의 생태계를 밀도 있게 관찰하고 촬영해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 `큰가시고기`라는 물고기의 생활상이 감명 깊었다.   큰가시고기는 바다로 나가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회기본능에 의해 부화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산란을 하게 되는데, 이때 수컷이 안전하게 산란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한 후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파내고 수초(水草)를 물어다가 폭신하고 안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후 암컷은 수초집 속에 들어가 산란만 하고는 그냥 그곳을 떠나 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오로지 수컷 혼자서 맡아 알들이 부화하여 치어(稚魚)가 될 때까지 7∼8일 동안 보살피며 키우게 된다.   산란한 알에 정액을 뿌린 뒤부터는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며 24시간 동안 늘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알들이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고 수초집에 잘 보존되도록 주둥이로 알들을 눌러주며 지킨다.   알이 썩지 않도록 알 덩이를 뒤집어주기도 하고,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기 위해 지느러미로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주둥이로 알집을 눌러 주어 부화를 잘 하도록 도와준다.   만약 적들이 알을 훔쳐 먹기 위해 침입해 오면 알을 지키기 위해 모든 지느러미를 가시처럼 꼿꼿하게 세우고서 적에 대항하여 위협하고 싸우며 기어코 적을 물리치고 만다.   부화한 후에도 치어들이 안전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계속 곁에서 지켜 주고 도와주다가 끝내는 지치고 탈진하여 죽게 된다. 죽은 후에는 자기 몸을 치어의 먹이로 내주어 새끼들이 뜯어먹고 힘을 얻어 바다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큰가시고기의 일생은 우리 인간 세계에서의 자식을 위한 부모들의 희생적인 한 생애를 상징해주고 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자식을 위한 부모의 진심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이지 않아서 그렇지,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큰가시고기 같은 부모의 희생의 산물인 것이다.   여기 인간 승리의 큰가시고기 이야기가 있다. 10여 년 전 KBS에서 방영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원도 가리산의 `눈먼 벌치기 노인`의 이야기다. 그때 그의 나이가 63세였다.   세 살 때 무슨 병으로 눈이 멀었고 화전민 아버지가 이 장님을 키웠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일하다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 아버지를 이 장님 청년이 돌보면서 꿀벌을 치며 살았다.   어느 날 친구가 와서 이 장님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진찰을 해 봤더니 2백만 원만 들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꿀벌을 쳐서 3∼4년이 걸려 2백만 원을 모았는데, 불행하게도 하반신 마비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장례비로 다 써버렸다.   다시 2백만 원을 모으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서 시신경이 다 망가져 수술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그의 친구가 수기를 써서 세상에 알렸다. 이 수기를 읽고 미용사인 어떤 처녀가 그녀도 절름발이였는데 그 장님에게 시집을 갔다. 그래서 딸을 둘 낳고, 셋째로 아들을 낳고는 그만 죽어버렸다.   연년생의 딸 둘과 핏덩어리 아들을 이 장님이 꿀벌을 치면서 키워서 그때 22살, 21살, 20살의 3남매로 성장했다. 키우는 동안 한 번도 그 세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3년 동안 국을 한 번도 끓이지 않고 화롯불도 피우지 않았다. 아이들이 델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앞 못 보는 장님이 꿀벌을 치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기 기저귀 갈아주고 하면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아이 키우는 것이 기쁘고, 아이들 잘 자라는 것이 감사하다고 술회했다. 강원도 산속의 큰가시고기가 세운 지느러미 빛이 온 세상을 활짝 빛나게 했다.   아버지는 우리집 큰가시고기, 자기는 없고 자식만 생각하신 분. 쓴 것은 자기가 삼키고 단 것은 뱉어 자식들에게 먹이신 분. 잘못은 자기 책임이라 뒤집어쓰고 잘한 것은 아들이 했다고 자랑하신 분.   자식 잘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신 분. 임자 없는 묵은 뫼 벌초도 해주고, 혼자 사는 과부 할머니 땔나무도 해다 주고.   내가 백점을 받아 와도 그것을 보고 무엇인지 잘 모르셨지만, 학년이 바뀔때마다 상으로 타 온 공책·연필을 보고는 활짝 웃으셨던 분.   할아버지 제삿날에 내가 쓴 지방을 보고는 그 글자를 알지 못하면서도 참 잘 썼다고 칭찬하시며, 당신이 죽어 내가 제사를 지낼 때는 따로 제삿상 차리지 말고 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주전자만 놓고 절하라 하신 분.   그런데 지금 내가 목사가 되어 그 말씀 따르지 못해, 그 날이 올 때마다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우리집 큰가시고기셨는데. (2011.5.25) 배 태 영 경희대 명예교수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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