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의 모든 산 것들, 원생동물인 아메바로부터 고등동물들과 단세포 식물에 이르기까지 제가 사는 것보다 종족 번식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등동물일수록 더 그렇다. 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야생 조수들은 1~2년이면 생식 능력이 생기고 맹수들은 5~6년이 돼야 2세를 생산하는 걸로 알고 있다. 크게 보아 고등동물인 인간도 14, 5년이 돼야 생식 능력을 갖는다고 함이 정설이다. 무슨 학술적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내려본 판단일 뿐이다.  이른 봄 산야의 진달래는 먼저 꽃망울부터 터트리고 밭두렁 어디에서나 발길에 차이는 쇠비름은 꽃과 잎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자라 씨부터 영글기에 바쁘다. 요놈은 얼마나 생명력이 강인한지 씨 맺은 다음 바로 뽑아버려도 맨 땅에서 잎은 시들시들하면서도 생명은 유지해 간다. 종족 번식을 위한 끈질긴 생명력은 아무리 잡풀 나부랭이지만 번식을 위한 집념은 감탄을 자아낸다.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 2세가 나면 라이거라 하고,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는 노새라는데 이들은 생식 능력이 없다. 두견이과에 속하는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그래도 종족 번식은 해야 함은 아는지 알은 종달새, 때까치 등의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놓기만 하면 그들이 남의 알인지도 모르고 제 알과 함께 품어 알을 까준다. 이름하여 탁란(託卵)을 하는 얌체족도 있는 것이 생태계이다.  재배종 인삼보다 약효가 뛰어나 신초(神草)라고도 불리는 산삼은 인삼의 씨를 먹은 조류의 배설물에서 탄생한다. 범상치 않음의 약효가 있다는 명성에 걸맞게 매개역인 조류는 야산이 아니라 꼭 심산유곡에서 배설한다는 사실에서 신비감마저 들게 한다.  돗자리 재료인 왕골과에 속하는 방동사니는 번식력이 얼마나 강한지 하룻밤에 고손자까지 보고 손이 끊어져 양손 찾아 나선다는 농민들의 속설이 있다. 엉거시과에 속하는 도꼬마리란 놈은 사람들의 옷깃에 달라붙어 있다가 떼어버려야 살길을 찾고 민들레는 깃 끝에 씨를 달아 바람 부는 대로 실려가 착지하는 곳이 저가 살아갈 터전이다. 시집 잘못 와 고생하는 아내를 민들레 씨에 비유하는 애처가의 자책성 푸념도 있다. 쇠비름, 도꼬마리, 민들레는 타력에 의해 종을 이어가지만 우리들의 먹거리는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서만 종을 이어간다. 우리들이 취하는 식용작물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쉽게 짐작도 못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어 친근한 수박·참외의 일생을 추적해 본다.  지금은 사시사철 과일이 흔전만전이지만 60년대만 해도 여름이나 돼야 여름 과일의 총아 수박·참외가 사람들의 구미를 당겼다. 지구상에 인류가 나타나고 의식주가 원시적일 때 먹거리는 뭐였을까? 아마도 야생이 주축이었을 것이며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재배하다 보면 식용으로 알맞게 진화하고 계량의 길을 거쳐 오늘의 먹거리가 됐을 것이다. 야생이야 자력으로 종족번식을 해왔지만 순전히 타력에 의해서만 종족번식을 하는 참외·수박은 어땠을까? 먹을 때마다 씨는 매몰차게 버려지지만 종족 번식의 본능이야 어찌 없겠는가. 아주 선택된 씨앗만 과학 영농, 계획 영농이라는 미명아래 종족 번식을 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싹도 한번 틔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칠 씨앗이 얼마나 될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수천 수만 씨앗 중 극히 선택된 것만 종자가 되듯, 수만 수억 정자 중 겨우 한 마리만 난자와 만나 인간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자꾸만 오버랩이 됨을 어쩌지 못한다.  먹다 뱉어버린 하찮은 수박씨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보노라면 어줍잖게도 생명존중 사상이 생긴다. 보다 못해 베란다 초본(草本) 화분에다 비집고 씨를 넣어 흙을 슬쩍 덮어 줬더니 난데없는 콩가물시루가 생겼다. 싹이 한꺼번에 다 튼 것이다. 그것도 생명인데 아무렇게나 버려져 썩어 버릴 것이 아니라 싹이라도 한 번 틔어보고 일생을 마치라는 뜻이었다. 그 비좁은 화분에서 야위어 가냘픈 모습으로 자라더니 그것도 생식 본능은 어쩌지 못하는지 금방 꽃도 맺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더는 살 수가 없음을 자인했는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고사하고 마는 것이었다. 어느 동식물인가는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스스로 동반옥쇄(玉碎·자살)를 한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화학비료가 일반화되기 전, 6·25 전후까진 인분이 더없는 거름이었다. 대체로 6, 70년대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임은 어쩌겠는가.  상전벽해가 돼버린 오늘의 압구정도 당시는 야채밭이었으며 과수원이었다. 그 `거름`으로 야채 과수 농사지어 강북 시장으로 손수 리어카로 끌어다 팔았다는 것이 당시를 살아 온 시장 상인들의 산 증언이다.  지금이야 시골 도시 모두 위생처리를 하기 때문에 인분이 논밭으로 나갈 일이 없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길을 가거나 들판에서 일하다가도 생리현상처리는 논밭 후미진 곳이나 밭고랑이었으니 그게 바로 노천화장실(?)이었다.  지금 브릭스 4국이라는 경제중진국 어느 한 나라도 화장실이 없다고 하니 여기 비하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다. 채 소화도 되지 않은 씨는 넉넉한 `거름`을 깔고 앉았으니 얼마나 무성히 자라 튼실한 열매를 맺을 것인가. 그 열매를 일러 `ㄸㅗㅇ수박`이라 했으니 그걸 발견하면 재수 좋다(?)고 하며 위생이고 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었다.  미물이나 고등동물이나 생명은 존귀이다. 어디 싹 한 번 틔어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종이 수박·참외뿐일까만 그것이 유독 다르게 느끼는 것은 그 종이 우리들과 가장 친근한 과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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